소스라치게 놀라는 밤이다. 하루를 돌이켜보니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서, 반대로 온종일 일만 했음에도 남는 것이 없어서. 늘 그렇듯 정해진 대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한없이 가벼운 하루가 마감된다.
그럴 때에 우주와 뇌, 특수상대성은 매우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준다. 나의 하루가, 나의 시간이, 다른 곳에서 좀 더 의미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매력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 매력에 빠진 내가 조금은 무모하게 덤벼든 이야기이다. 제발 그 끝이 치졸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에셔의 그림을 자주 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무한한 동경과 애정을 느낀다.
내가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려 고개를 빼들자 여자가 피식 웃었다. 내 의도를 비웃는 그 표정에 부질없는 노력을 접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상대방을 볼 수 없었다. 상대의 표정이나 기세 따위를 알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게임을 하며 상대의 베팅 성향을 파악하여 앞으로의 패를 예상하는 것. 승패가 관련이 없다면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이 못내 미심쩍으면서도 달리 수가 없으니 딜러가 건네준 카드를 받아들었다.
가장 높은 점수의 카드 다섯 장을 가진 플레이어가 이기는 게임인 텍사스 홀덤이 시작됐다. 블라인드 10/20 테이블이었다. 딜러 버튼의 위치가 정해지자 스몰 블라인드가 10칩을, 빅 블라인드가 20칩을 냈다. 플레이어들이 각 두 장씩 카드를 손에 쥐자 시계 방향으로 베팅이 시작됐다. 첫 게임에서 나는 언더 더 건이었다. 핸드가 나쁘지 않았으므로 콜을 외쳤다. 이어 플레이어들이 각기 참전 여부를 결정했다. 레이즈가 두 명, 폴드가 한 명이었다.
프리플랍 단계가 끝나자 딜러는 번카드를 버리고, 세 장의 카드를 테이블에 깔았다. 헛기침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각기 액션을 취했다. 프리플랍, 플랍, 턴 단계까지 착실히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딜러 오른편인 블러핑 포지션에 앉은 자를 유심히 살폈다. 베팅 성향이 눈에 익은 탓이다.
리버 단계까지 모두 끝나자 딜러가 마지막 카드를 오픈했다. 승자는 7-7-7-9-9 풀하우스였다. 나는 이 카드 조합을 본 적이 있었다. 형이 골든 멤버에 합류하여 벌인 게임에서 처음으로 이긴 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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