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이 간절하던 날이 있었다. 누구라도 좋았다. 한 조각 온기를 나눠 받을 수 있다면 조금쯤 비굴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빌고 싶었다. 나 좀 안아달라고. 나 좀 알아봐달라고. 살아있으니 나도 온기를 품은 존재일 텐데, 그 당연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언 땅에 파묻힌 나뭇조각처럼 손발이 굳었다. 혼자서 따스할 수 없는 남자와 가진 것은 온기뿐인 여자를 떠올렸다. 한 잔의 차, 고양이 앞발, 극세사 이불 밑 온수매트, 갓 쪄낸 찐빵. 그 정도의 온기마저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다. 쓰는 내내 물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품어야 할 적정 온도는 얼마일까? 균형을 맞추는 것은 늘 어렵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말라는 조언은 쉽고 흔한데 정작 그걸 해냈다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무너진 것을 회복하고 조금 따스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 누군가는 듣고 싶을 것 같아서.
508호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문에 귀를 붙였다. 인기척이 없었다. 고장 난 문고리가 맥없이 돌아갔다. 확인만 하고 닫을 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508호는 못질한 관처럼 조용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날 덥혀주던 세계가 실은 사업장일 뿐이고, 가진 게 별로 없는 여자가 쓰라린 이들을 품으며 돈을 벌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레모나의 목소리도 들렸다. 적당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와 마주치지 않고 미래빌딩을 빠져나갈 길도 없었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면서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눈앞으로 구두 한 켤레가 들어왔다. 오른쪽 밑창만 심하게 닳은 신사화였다. 바닥에서 치민 한기가 오금을 파고들었다. 기침이 터질 것 같았다. 얼른 코를 감싸 쥐었다. 벽을 넘나들던 소음이 오늘만은 귀중했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댔다. 적어도 두 사람이 침대에 오른 것 같았다.
“카모마일 차 좋아하시죠?”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이마가 축축했다. 겨드랑이에서도 진득한 땀이 배어 나왔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체온을 조금쯤 실감할 때였다.
“특별히 팔베개해드릴게요.”
레모나의 수완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가자면 몇 가지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만의 특별한 세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알고 있었으나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별개였다. 체념의 순간 침대 밑의 어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깐, 아주 잠깐만.”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애걸했다. 뒤틀어진 스프링 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왜 소리 지르지 않는 거지? 긴급통화 어플은 켰을까?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지체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침대 밑에서 빠져나오려는데 레모나가 말했다.
“세 곱절 쳐주셔야 해요.”
2016년 첫 웹소설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로 〈카카오페이지×동아 공모전〉 우수상 수상
2011년 〈올레 e북 공모전> 우수상 수상
2019년 〈대한민국 창작소설대전〉 작품상을 수상했다.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터널, 왈라의 노래」 당선
유튜브 채널 ‘웃기는 작가 빵무늬’를 운영 중.
웹소설 주요작품으로 「시한부 황후의 나쁜 짓」(2021), 「같이 목욕해요, 공작님」(2020) 등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