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위안을 주는 사람도 아니다.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닫혀 있고 또 갇혀 있다. 나의 욕망이 내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욕망에 저당잡혀 우리는 오늘도 일상의 과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 욕망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타면 우리의 일상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된다. 벗어나는 순간 실패와 좌절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옥을 감옥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말들이다. 말들은 우리에게 어찌 살아야 한다고 명령을 하기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식을 권유하기도 하고 때로 우리를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우리의 인식을 상투화시켜 우리의 욕망을 다스리고 우리로 하여금 갇힘을 갇힘으로 여기지 못하도록 만든다. 시는 이 상투적 언어, 죽은 언어들에 대한 저항이고 그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여기 10편의 시들 역시 이 벗어남을 위해 쓴 것들이다. 하지만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압박 속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내 시들이 보여주는 이 어눌함은 그 답답함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내놓기 부끄럽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마저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시를 쓴다.
떼로 오는 것들은 아름답다
별들이어도
박쥐여도
어지럽히고 냄새나는 것들이어도
몰려 와 철책을 붙잡는 검은 손들마저도
아름답다
그들은 시간을 건너 살아가기에
머물러 울타리를 만들지 않고
그곳과 이곳을 나누지 않으므로
누구도 너라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언제나 그들의 시선에 의해
높은 담장 안의 마른 나무와 썩은 풀들은
있음이 증명되고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은
그들의 발자국에 따라 항상 의심된다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등이 있다.
rivertel@hanmail.net
날다 사라진다 걸려 있다 정처 전지적 시인 시점 이른 여름 코드 블랙 지키다 긴 여자 손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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