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는 빈 배들만 유랑했다. 사람과 고래로 들썩이던 포경선은 자취를 감추고 상념에 젖은 어부들의 눈에 바다를 향한 그리움만 짙어갔다. 오래전 녀석들은 삶의 터전이었고 갈급한 심장이었다. 빈 배를 응시하는 어부들의 눈에는 분연히 타오르는 바다를 향한 갈망으로 차올랐다. 생명의 피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다면, 심해를 가로지르는 녀석의 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박은 전부를 걸 수 있었다. 기필코 녀석들을 만나리! 한바탕의 사투는 생존을 뛰어넘는 인간 발로의 몸부림이었다. 이제 작살을 든 그에게 두려울 건 없다. 거대한 장벽 앞에 질주하는 박과 붉은 바다가 있었다.
그때 선미가 서서히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전기를 든 선장의 얼굴이 배 아래에서 보였다. 박의 바람대로 뱃머리를 몽돌 해안 쪽으로 완전히 돌렸다. 배를 몰아본 선장이라면 박의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고 박은 마음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간밤에 놈의 꿈을 꾼 것도 그렇고, 어쩌면 놈들을 오늘 볼지도 몰랐다. 멸치 떼를 몰고 오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박의 머리카락을 치솟게 만들자 박의 몸은 파르르 떨었다. 모름지기 선수 생활로 몇 십 년 배를 탔던 박이었다. 배는 물결을 가르며 몽돌해변으로 들어섰다. 멀리 수평선만 가물거릴 뿐 마침 오늘따라 작은 선박조차 보이지 않았다. 놈들이 한바탕 놀기 좋았다. 푸른 화선지 위에 하얀 여행선만 넘실거렸다. 하늘과 바다 그 중심에 배가 있었고, 박이 있었다.
몇 마리의 갈매기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떼 지어 날아왔다. 드디어, 놈들이 왔구나! 바다에 놈들이 보이지 않는데도 박은 소리를 냅다 질렀다.
“고래다! 고래가 왔어!”
그의 외침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 배 로프를 잡고 박이 소리 지르는 쪽을 바라봤다. 박은 계속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담겨 있었다. 고래는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힘에 끌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뚫어지게 보았다.
수많은 갈매기 떼들이 하늘 아래에서 내려왔다. 스피커에서 고래가 나타났다는 방송을 하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일층과 이층에 있던 사람들이 3층으로 급히 뛰어올라오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박의 소리에 이어 선장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아직 사람들 눈에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고래를 본 것처럼 저마다 사람들이 “고래다!” 소리쳤다.
박은 조타실 입구까지 뛰어올라가 고래 만세를 외쳤다. 멀리서 물거품이 일었다. 하얀 물거품들이 샘물이 퐁당대듯 연이어 튀어 올랐다. 놈들이었다. 물살을 가로질러 신나게 휘돌아 놈들이 배 쪽으로 헤엄쳤다. 몇 백 마리를 넘어 족히 몇 천 마리나 되는 참돌고래 떼였다. 놈들이 가깝게 다가오자 뱃고동 소리가 거듭 울렸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까무러치듯 소리를 질렀다. 놈들이 내뱉은 뽀얀 포말이 거품을 일으키며 솟아오르자 놈들과 함께 한 찬연한 시간들과 뒤범벅되어 박의 심장이 다시 가파르게 뛰었다. 검정 주둥아리를 삐죽 내민 놈들은 수정같이 빛나는 물방울을 일제히 일으키며 자신들의 몸을 바닷물에 맡기며 달리고 달렸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