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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 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다 2 : 회사원 최관조 씨의 경우

소설 단편

최수철 2022-02-24

ISBN 979-11-922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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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써온 짧은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돌이켜 보니, 짧은 이야기를 쓸 때면 늘 마음이 홀가분하고 은근한 기쁨 같은 게 느껴지곤 했다. 누군가와 잠시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 터이다. 더욱이 짧은 이야기는 짧은 마디와 같은 것이어서, 다른 것들과 서로 잘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힘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짧은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내 삶의 중요한 고비에 맺어진 여러 인연의 소산이었다. 이제 그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독자들과 새로운 인연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그가 그곳에 머물게 된 지 이틀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밤 아홉 시쯤, 그가 소설가의 책상 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맞은편 방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누구세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대답했다. 젊은 남자의 굵은 목소리였다.

“세탁물 배달 왔습니다.”

“우린 세탁물 맡긴 게 없는데요.”

여자가 더듬거리며 말하자, 젊은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세탁물은 무슨 세탁물이야? 빨리 문이나 열어. 나란 말이야.”

곧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웃음기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당신도 참. 깜짝 놀랐잖아요.”

두 사람은 함께 소리 내어 웃었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따랐다. 관조 씨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신혼부부일지도 모르는 두 남녀의 장난기 섞인 대화가 그에게는 무척 행복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그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 날도, 늦은 저녁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고, 곧 이어 ‘누구세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치미를 뚝 뗀 남자의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신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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