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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 포도 밑에는 여우가 있다 3 : 회사원 최관조 씨의 경우

소설 단편

최수철 2022-02-24

ISBN 979-11-922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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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써온 짧은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돌이켜 보니, 짧은 이야기를 쓸 때면 늘 마음이 홀가분하고 은근한 기쁨 같은 게 느껴지곤 했다. 누군가와 잠시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 터이다. 더욱이 짧은 이야기는 짧은 마디와 같은 것이어서, 다른 것들과 서로 잘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힘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짧은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내 삶의 중요한 고비에 맺어진 여러 인연의 소산이었다. 이제 그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독자들과 새로운 인연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그 후로 그는 자주 그 방법을 사용했다. 마주 대하기가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으레 상대방의 머리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돼지 머리를 올려놓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듣기 거북한 말을 들으면 어디선가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한동안 모처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자주 실없이 웃음을 흘리는 여유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그의 나날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고, 그의 가슴은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설픈 해결책은 결국 다른 문제를 낳는 법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도 적용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람들의 머리와 돼지 머리를 바꿔치기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 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머리가 뒤바뀌는 일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누구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마주 앉아 대화를 하다가 조금만 피로해지거나 짜증이 나면 돼지 머리를 동원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그가 전혀 원하지 않은 경우에도, 상대방의 얼굴이 어느새 슬그머니 돼지 머리로 뒤바뀌어 있곤 했다.

그 결과, 그는 이러다간 언젠가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돼지머리로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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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어떤 여우가 될 것인가 ams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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