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는 세계 각지에서 버려진 옷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푸석푸석한 그 황무지엔 내 동생이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당신이 첫 출근을 위해 장만한 슈트와 무르팍이 늘어진 내 추리닝까지 어지러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옷들이 어떠한 경로로 거기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이 행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자기도 좀 살아보겠다며 우리 행성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심지어 재작년에 내가 먹고 버린 빵 봉지가 얼마 전 남극의 로스해 인근에서 태어나 갓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기 펭귄의 창창한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얼기설기 엉켜 있다. 혹 누군가 왜 여기에서 ‘그’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사실 그때껏 우리의 대화는 중구난방이었는데 거기엔 서로 다른 언어도 분명 한몫했다. 일테면 하연과 올렉산드르는 우리말로 대화했고, 나탈리야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땐 우크라이나어로 소통했으며, 내가 끼어들면 누군가의 통역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모두가 각자의 모국어를 두고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곧잘 깔깔거렸다. 무르익은 분위기가 사그라든 건 내가 또 한 캔의 맥주를 땄을 때쯤이었다.
올렉산드르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나탈리야가 뜬금없이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올렉산드르는 그라피티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는 일을 이미 나탈리야에게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내가 본 최고의 명작이었는데 아쉽게도 헐값에 팔렸지 뭐예요. 그런데 화가가 바나나를 좋아하나 봐요?
나탈리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그니처가 바나나길래요.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 그거.
올렉산드르는 나를 향해 맥주 캔을 들며 별거 아니라는 듯 픽 웃었다.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취약하잖아요. 개량도 쉽지 않고요.
그런가?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아무튼 자신의 처지를 빗댄 시그니처, 뭐 그런 얘긴가. 나는 올렉산드르와 맥주 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마셨다. 그날 우리가 주고받은 농담은 거기까지였다. 괜한 걸 물었나, 아니면 취기에 나도 모르게 말실수라도 한 걸까. 괜스레 겸연쩍었던 나머지 나는 캐슈너트와 피스타치오 등 마른안주를 접시에 담았다.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피에카르스키를 찾아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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