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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설 단편

김은우 2022-08-18

ISBN 979119221131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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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이 있는 물체는 왜 서로를 끌어당길까요? 꿈은 왜 꾸는 걸까요? 인간의 행동은 모두 뇌의 명령일까요? 초등학생들이 질문할 법한 수많은 궁금증이 내 안에 있다.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질문의 답을 물론 내가 알 리 없다. 그들이 발견해낸 수많은 법칙들은 존재하는 것들의 증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다음은 유명한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이다.

관측하는 순간, 전자는 입자로 바뀌어요.
그렇지 않으면요?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지요.
그럼 관측하지 않으면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두운 골방에 제가 갇혀 있다면,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제 존재를 모른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러한 마음으로 썼다.

일상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현행범인 편의점 강도를 놓쳤을 때였다. 태호 선배가 덫을 놓았고, 인경이 토끼를 몰았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강도를 압박하고 있을 때 때마침 뒤따라온 태호 선배가 습관처럼 얼씨구, 네가 쥐야? 라며 약을 올렸다.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내젓고는 거리를 좁혀 순식간에 강도를 제압했다.

“잠깐, 이 새끼 아니잖아!”

태호 선배가 수갑을 채우다가 깜짝 놀라며 강도를 밀쳐냈다.

“네? 무슨 소리에요?”

그녀는 곧장 강도의 모자를 벗겼다. 아까 그놈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체격만 비슷했다. 모자도 범인이 쓴 검정이 아닌 진한 초록색이었다. 초짜도 하지 않는 실수를 하다니, 허탈해하며 소리쳤다.

“너 누구야? 범인도 아닌데 왜 도망갔어?”

“당, 당신이, 쫓아왔잖아요!”

그의 말은 일견 타당하게도, 허무맹랑하게도 들렸다. 쫓아왔으니 도망갔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무작정 도망갔다고? 인경은 헛웃음을 흘렸다. 다행히도 그 일은 근처에 있던 다른 팀이 진범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인경은 한동안 동료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인경은 동료들의 짓궂은 농담을 들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의아했다.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도 인상착의를 잘 기억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체격만 비슷했을 뿐 옷차림도 달랐다. 그런데도 혼동을 한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한동안 멍해진 정신을 추스르고, 현장 일에 집중했다. 이원동 범인에 대한 생각이 불쑥 치밀어오를 때마다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놀림이 뜸해질 즈음 같은 실수가 일어났다. 두 번째가 되자 동료들은 침묵했고, 태호는 휴식을 제안했다.

“좀 쉬자.”

태호가 휴게실에 누워 있던 인경에게 캔커피를 던지며 말했다. 인경은 날아오는 캔커피를 낚아채며 단칼에 거절했다.

“싫어요.”

태호의 얼굴이 험악해지자 인경이 변명조로 덧붙였다. 제가 유일한 목격자잖아요, 목소리가 한없이 기어들어갔다. 태호는 그런 인경을 착잡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 사건에 특별히 마음 쓰는 건 알아. 어린 피해자일수록 더 그런 법이니까. 더군다나 우리에겐 사건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지. 이해해, 이해하고말고.” 태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인경을 지그시 바라봤다. “근데 넌 그 사건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휘둘리고 있어. 이미 네 역량이 넘어선 사건이면 과감하게 포기해. 매달리는 게 능사는 아냐. 피해자는 많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경은 태호의 모든 말에 동의했다. 피해자는 많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은 그보다 많을 터였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래도, 그래도. 인경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에 입술을 달싹였다.

피해자 아이가 사망한 날, 인경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뱃속의 아이를 유산했다. 슬프고 비극적인 사고였다. 아이의 운명이라며, 인경은 억눌린 오열 속에 아이를 떠나보냈다.

그 일이 있기 전, 인경은 아름드리나무에 색색의 실타래가 얽혀 있는 꿈을 꾸었다. 나무에 걸려 있는 실타래가 햇빛에 찬란하게 반짝였는데, 실이 너무 가늘고 고왔다. 곧 끊어질 것 같은데…… 꿈속에서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틀어지고 말았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그들에게 슬픔은 나눌수록 진창에 빠지는 듯했고, 고통은 매 순간 생생히 되살아나 상처를 헤집었다. 서로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결국 남편이 항복을 선언했고, 관계는 정리되었다.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페이퍼 맨> 당선
2020년 단편소설집 『목성에게 고리는』 출간
2020년 『목성에게 고리는』 문학나눔도서로 선정

 

valok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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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한국문학의 미래와 마주치는 순간 책물고기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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