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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여하정 2022-09-28

ISBN 979-11-9221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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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수상작

「침대」는 실제 미국에서 낯선 남자와 커다란 침대를 중고로 거래한 체험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구체화되어 서로 다른 인종, 겉모습만 봐서는 아무도 그 관계를 예측할 수 없는 두 남자가 내 앞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침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식보다 그들과 재인의 만남과 어긋남의 사연이 저에게로 와 스스로 발효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얘기일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고단한 삶에서 자신들이 한 선택을 정당화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무하고 믿어주며 그렇게 견뎌 나가는 것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인이 한 선택에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도 되고 궁금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그 사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다면 그 자체로 빛날 거라 믿습니다.

스토리코스모스와 제 글을 선택해 주신 김덕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글을 쓸 때 맞닥뜨리게 되는 막막함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이 이야기가 이 세상에 어떤 작은 의미라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과 맞물립니다. 이런 와중에 읽고 쓰는 일에 여전히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 힘이 납니다. 앞으로도 삶의 진실된 이야기를 정제된 언어로 형상화하기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재인의 아이는 책도둑이었다. 다른 건 절대로 안 건드렸다. 이상하게 책만 훔쳤다. 서점에서도 드럭스토어에서도 놀러 간 친구 집에서도 책을 가져와서 그 침대 밑에 은밀히 숨겨뒀다. 여러 번 주변에서 연락을 받고 재인이 추궁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책을 훔치는 건 괜찮다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아이가 읽고 싶어하는 모든 책을 척척 사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그렇게 책을 훔칠 정도로 빈곤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재인은 아이의 아빠를 떠올렸다. 식당 매니저였던 그는 자신이 떠나온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재인에게 한 적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인 것처럼 영어 발음이 자연스러웠고 그의 외모를 보고 스페인어로 말을 거는 사람이 나타나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못 들은 척하는 것인지 아예 상대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침대 위에서 잠들었던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페인어로 재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를 했다.

재인이 임신했다고 고백했을 때 그의 반응은 의외로 격했다. 나는 너와 동의하에 즐겼다는 그의 단호한 표현 앞에서 재인은 할 말을 잃었다. 아이를 자신의 동의 없이 낳고 양육비를 요구할 수 없다는 일종의 각서까지 요구했을 때는 아이를 낳으려면 이 식당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면서 재인은 자신이 어쩌면 한국에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는 이곳에 정착하는 하나의 끈인 동시에 퇴로를 차단하는 구실이 되어 주었다. 재인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이는 수학을 유독 잘해서 종종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혼자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생각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이곳에는 싱글맘이 차고 넘쳤다. 이 광대한 대륙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부수적인 장점이 아니라 때로는 본질적인 생존 조건이 되어준다는 것을 재인은 깨달았다. 적어도 모녀에게 겉으로 편견을 드러내거나 노골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상황이었다.

아이가 처음에는 책만 훔쳤기 때문에 재인은 그 나머지가 양호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그게 더 이상 용인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선이 시간과 함께 다가왔다. 아이는 점점 다른 것에도 손을 댔다. 몸이 커지면서 행동반경도 덩달아 커져 아이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재인은 한국에서처럼 아이에게 훈육을 할 수 없어 화가 났다. 누군가 신고해서 아이와 재인을 분리시킬까 봐 섣불리 종아리를 때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 사이 아이는 재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무섭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는 집안에서 무서워할 사람이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재인은 도저히 참기 힘들어질 때 아이에게 여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한국말로 욕을 했다. 프리스쿨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온갖 피부 색깔의 어린아이들을 종일 상대하고 학부모들의 히스테리와 강박을 받으며 생긴 스트레스가 때로 거기에 섞여들었다.

그건 딸을 위한 것이었는데 때로 재인이 꼭꼭 눌러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은 것들을 함께 불러왔다. 너는 범죄자라고 했고 곧 감옥에 갈 거라고 저주했다. 너를 여기에서 낳은 건 실수라는 말도 했다. 그 말이 모두 진심은 아니었다. 그런 말들을 내뱉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물끄러미 재인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없이. 그런 날 재인의 침대 옆에 아이가 눕곤 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재인은 그러면 또 여지없이 아이에게 지고 말았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서로 주고받으며 모녀는 꿈도 없이 깊은 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재인은 그런 회상을 할 때마다 가슴을 치곤 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아이는 또 집을 나가거나 사고를 쳤다. 타인이었다면 재인은 그런 사람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재인의 그런 무력함을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 이용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우는 시간 동안 재인은 평생 아이에게 줘야 할 사랑, 우려, 초조함, 절망을 모두 소진해 버린 듯한 느낌에 휘청거렸다. 아이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까 봐 재인은 진심으로 두려웠다.

2022-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문학상 당선

 

blanca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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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돌아간대도 또, 그럴 생각이에요? 솔트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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