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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에 대해 말해봐

소설 단편

주영하 2022-09-28

ISBN 979-11-9221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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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앉을 때면 뭘 써야 할지부터 생각한다. 그것이 쓰는 행위 자체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느껴서다. 물론 잘 준비되는 법은 거의 없다. 어렵게 그 과정을 통과해 쓰기 시작하더라도,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변명과,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는 이상한 욕구와도 싸워야 한다.

그런 날이면 잊지 못할 악몽 같은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만일 어느 밤의 꿈들에 대해 쓴다면, 그건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쓰는 책임을 일정 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안도감을 느끼고 싶다.

이 작품도 그렇게 글 속으로 들어온 내 악몽들 중에 하나다. 그건 길고 긴 지뢰밭과 타조들이 나오는 꿈이었다. 너무 격렬해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옆 사람이 놀랄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 꿈을 메모해두었고 몇 년이 지나서야 무심을 가장하며 첫 문장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작은 안락과 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 전쟁을 몇 달째 지켜보면서 새삼 이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낭만적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감춰보려 애썼지만,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에 결국 있는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 미숙함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곧장 향한 곳은 타조들을 가둬둔 울타리 쪽이었다. 군인들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울타리를 향해 돌진했다. 놀란 타조들이 높은 울음소리로 경계를 표시하며 우르르 울타리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울타리를 넘어 들어간 군인 몇이 진흙탕을 철벅대며 타조들의 목에 올가미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난투극처럼 보였고, 강철 포에 느슨하게 기댄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차수들이 휘파람을 불고 웃음을 터뜨렸다. 타조들은 날개를 펼치고 목털을 부풀리며 위협에 맞서다가 결국은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건 언뜻 어린아이들의 부질없는 게임이나 잡기 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군인 하나가 붉은 털 타조들의 발에 깔려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날카로운 총성이 울린 건 잠시 뒤였다. 붉은 타조 한 마리가 깜짝 놀란 듯이 풀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가 한순간 얼어붙은 듯 멈춰 서더니 이내 진흙탕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 곧이어 몇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기오와 나는 그 모습을 꼼짝 않고 지켜보았다. 내 몸이 들썩이자 기오가 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나를 바라보며 잠자코 있으라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은 일자로 꾹 다물려 있었다. 빗줄기가 얼굴 위로 흘러내려 그는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고 있었어. 네가 누군가와 무전을 해왔다는 거. 그가 누구건 나는 상관없고, 묻지도 않겠어.

기오의 눈길이 우리 뒤쪽을 향했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

그 고사목 지대 기억하지, 우리가 처음 타조를 데리러 갔던 곳. 거기에 멀쩡한 지프 한 대가 있었어.

*

분노가 느껴지나?

목소리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나는 답했다.

그들이 쓰러진 기오의 얼굴을 걷어찰 때, 그게 내 얼굴인 것 같았어요.

그런 걸 분노라고 하는 거야.

당신은 나를 속였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목소리는 침착하게 답했다.

자넨 이제 자유야. 이제 아무도 자네가 죽고 살건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그건 진실이야.

목소리는 또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거짓이지. 자네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가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어. 전쟁터에서 듣는 목소리는 늘 속임수를 쓰지. 내 말을 믿은 건 어디까지나 자네 의지였어.

나는 물었다.
우리 군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목소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타조들이 지뢰밭을 뚫었지. 자네 나라 군대는 우리가 기다리는 협곡으로 들어왔고.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그들은 전멸했네.

1978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2년 창비신인문학상 당선

 

zooyoungha78@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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