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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사랑

소설 단편

박유경 2022-11-14

ISBN 979-11-92211-47-3(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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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북한산이 있어 산에서 내려오는 떠돌이 개를 자주 만난다.
개는 멀찍이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나는 개가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개가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일지, 나를 물어뜯고 공격할지는 서로 충분히 가까워지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의 서늘함이 나를 오래도록 사로잡았고, 이 이야기를 쓰도록 했다.
이 세상에 어떤 종류의 사랑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란다.

다희는 중국 하얼빈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우주를 만났다. 외국 학생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중국어 수업에서 우주는 파키스탄에서 온 알리의 옆에 앉는 학생이었다. 한국 학생들이 알리를 두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피해도 우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군대를 갔다 온 남학생들이 우주에게 군대는 언제 갈 거냐고,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겁이 없다고 비아냥거렸지만 우주는 그저 웃고 말았다.

여름이 되자 노상에 있는 식당에서 양꼬치와 하얼빈 맥주를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늘어났다. 중국 학생들은 기숙사에 통금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늦도록 떠들며 술을 마시는 무리는 대체로 한국인들이었다. 노상 식당 위층에 사는 사람들이 험악한 말을 내질렀고, 그래도 새벽까지 술을 마셔대자 누군가가 아래로 유리병을 던졌다. 양꼬치를 먹고 있던 한국 학생의 발 옆에 유리병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모두 그곳에 더 이상 가지 않을 때, 우주가 혼자 노상에 앉아 양꼬치를 먹고 있었다. 다희는 슈퍼에 갔다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이었고 우주가 유리병 사건을 모르는가 보다, 어쩌지 망설이다가 말을 걸었다.

“여기 위험해. 위에서 유리병을 던져서 머리에 맞을 뻔했대.”

우주가 슬며시 웃으며 대꾸했다.

“알아.”

“아는데 왜 여기서 술을 마셔?”

“시끄럽게 안 하면 돼. 이 식당 양꼬치가 진짜거든. 먹어볼래?”

우주가 조용히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다. 그러곤 점원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양꼬치와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다희는 건물 위를 흘끔거리며 우주가 따라준 맥주를 마셨다. 양꼬치를 먹어본 다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맛있다!”

우주가 괜찮지? 하고 웃으며 또 손만 들어 점원을 불렀다. 점원이 우주에게 귀를 가까이 대는 모습이 재미있어 다희는 숨죽여 웃었다. 그 후로 종종 우주와 다희는 노상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여름의 하얼빈은 백야로 자정이 지나도 대낮처럼 밝았다. 고도가 높은 곳의 하늘은 조금 더 멀리 있어 앉아 있든 서 있든 밖에서라면 가슴이 탁 트였다.

다희는 우주와 자주 숨죽여 웃었고 가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외동이라거나 부모님이 이혼했다거나 하는 공통점을 알고 나서는 피할 수 없이 가까워졌다. 말을 하지 않고 각자 휴대전화를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누군가 유리병을 던졌다는 건물 위층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그 시간이 많이 그리웠고, 우주와 사귀게 된 것도 그때를 잊지 못해서일 거라고 다희는 종종 생각했다.

198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장편소설 여흥상사가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 출간

 

giiir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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