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고분발굴 장면을 보게 된 뒤 그 장면에서 소설이 시작되었고 몇 개의 다른 버전으로 수정되었다. 수정될 때마다 소설은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었지만 끝까지 남은 장면은 고분발굴 장면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두려움을 토로하는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던 나. 그래서 애초의 제목은 ‘침묵’이었고 그다음엔 ‘뼈, 돌, 꿈’이었다. 고분에서 발굴된 뼈 장면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깃돌과 연결되었고 꿈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많은 몰이해가 있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다르게 해석했고 이겨도 져도 상관없는 놀이에서조차 승부수를 던졌다. 수많은 오해와 몰이해를 경험하면서 나는 자주 다리를 삐끗했고 절뚝거렸다. 다리를 삐끗하면 마음도 그러했다. 균형을 잃어버리고 절뚝거리는 마음,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불면의 밤과 모양이 같지 않을까.
죽음이 두려워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지금도 없다. 다만 그 불면의 밤을 함께 지새우며 뼈, 돌, 꿈으로 이어졌던 이야기를 또 다른 이야기로 엮어갈밖에.
-연애할 때는 좋지, 문제는 헤어진 다음이야. 누구 하나는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 그게 문제라고. 사이가 틀어지고 나면 더 많이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나가더라고. 대부분이 그랬어. 그러니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아. 연애는 깨지기 쉬운 거잖아.
그들의 조언을 귓등으로 들으며 이석과 비밀연애를 시작했을 때 방송국에 출근하는 것이 일이 아닌 소풍 같았다. 한 스튜디오 안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도 연애하는 티는 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우리를 더욱 조바심 나게 만들었고 그 비밀이 촉매제가 되어 감정은 더 빨리 뜨거워졌다. 여러 주제로 특집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서로가 얼마나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놀라워했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접점을 또 하나 찾은 것에 감격하며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설렘과 뜨거움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그것이 우리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결혼을 할 것이었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뜨거움이 식기 전에, 아직 설레던 그때, 모든 것이 손을 잡고 섹스하는 것의 다음 순서로 미뤄지던 그때. 그랬다면 의무감으로라도 이 현실에서 도망칠 궁리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런 질문조차도 진지하게 던질 수 있었다. 내가 다쳐서 불구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극단적으로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 그의 대답은 늘 같았다. 걱정 마,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우리는 내일 당장 일어날지도 모를 어긋남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이 뜨거운 한 시절을 건너고 있었다. 이 모든 시절은 엄마가 아직 쓰러지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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