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소설의 습성은 나를 지루하게 한다. 이야기를 둘러싼 삶의 현상과 아름다운 반향들, 완곡한 플롯, 안개처럼 흐르는 문장의 숨결. 이런 소설이, 소설의 미학성을 드러내고,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고 하지만 나로선 지루하게 느껴진다. 내 성격이다.
나는 바로 직접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가령, 사과를 사려고 청과물 가게로 가서 흥정하거나 이것저것 빛깔을 고르지 않는다. 곧장 하나만 들고 냅다 튀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문학의 오랜 주제인 ‘존재’에 대해서 직접 말해버렸다.
낮 동안 별다른 일이 없을 때는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곤 했다. 우태희에게 전화를 건 건 잠복근무를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김위승은 마지막 장에서 사라진 범인을 더 이상 표현해낼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우태희는 낮잠을 자고 있었던 듯 횡설수설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흐흐, 없는 범인을 어떻게 표현하겠누? 나도 자네가 간 뒤로 미궁 속에 숨은 자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이런 게 떠올라.”
담배를 피워 무는 소리가 들린 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음…… 앨런 포의 소설 중에 「검은 고양이」란 작품이 있지? 거기 보면, 벽 안에 갇혀 있다가 느닷없이 울음을 우는 고양이가 나오잖아? 뭐라 정리하기 곤란하지만 미궁 속의 범인이란 말에서 벽 속에 있는 검은 고양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져.”
“검은 고양이?”
김위승은 의외의 말에 잠시 소설의 그 장면을 떠올렸다. 살해한 시체와 함께 벽 속에 넣어진 그 고양이는 피살자와 동질이지만 그로 인해 행위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범인의 일부이기도 했다. 우태희의 말은 범인이 검은 고양이처럼 벽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김위승은 곧장 의문을 표시했다.
“만약 그때 고양이가 울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때마침 벽 속에서 고양이가 울었기 때문에 범인은 드러났고 그 소설도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울지 않으면 여전히 유보된 상태이겠지. 유보가 지속되는 건 천형(天刑)처럼 무거운 게 아닐까. 검은 고양이처럼 벽 속에서 피살자의 썩는 냄새를 계속 맡아야 하니……”
“그럴까? 후각은 빠르게 마비되네. 이미 자신의 형질도 변형되지 않았겠는가. 결코 무겁지 않을 거야.”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