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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 판타지 :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이시경 2023-03-22

ISBN 979-11-92211-77-0(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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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을 쓰게 된 건, 아주 우연한 만남과도 같았습니다. 뚜렷한 영문도 모른 채 글을 쓰게 되었지요. 소설가가 되겠다는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과거 몇 년 동안 미국의 외진 소도시에서 지내면서 한국말을 지독하게 그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을까요.

그렇게 별다른 목적도 없이 매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잠이 들기 전까지, 시간이 나면 무조건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대개는 텅 빈 화면만 바라보다 끝나는 게 전부였지만, 간혹 저절로 차오른 글이 빈 화면을 가득 채울 때면 삶의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쓰고 또 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짧았던 글의 호흡이 점차 길어졌고 어느덧 단편 한 편의 분량으로 늘어났습니다.

그즈음, 푸른 도마뱀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차원을 넘어선 또 다른 세상 속에 존재했습니다. 아마도 감성과 이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지의 영역이랄까요. 신기하게도 삶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카 계곡과도 같던 지난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그 푸른빛을 지닌 환상성의 존재로 인해서였습니다.

데스밸리 판타지는 푸른 도마뱀과의 여정이 내 삶에서 부화된 이야기입니다. 그 여정을 통해서, 환상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환상성이라는 요소가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니라 분명 삶 속에 실재하는 것임을, 때론 이성으로 가늠되는 현실보다 더한 현실이 되어 삶을 견인해 나가는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 나가는 삶의 길 찾기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층위의 경험들이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춰졌으며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졌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도래했습니다. 오늘은 추웠다가 내일은 더웠다가, 여전히 불안정한 나날이 교차되네요. 그러던 중에 당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제 생일 달에 맞춰 들려진 소식이라 그런지, 큰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어쩌다 나는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걸까.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긴장도 됩니다. 하지만 이제 제겐 새로운 삶의 목적이 생겼습니다. 비로소 소설가가 되어 보고 싶다는 소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소설을 써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주어졌다는 것은, 꽤나 설레는 일입니다. 우연하게 시작된 글쓰기가 어느새 제 삶의 전부가 되었네요. 성실히 읽고 쓰겠습니다. 제게 할당된 지면이 있다면 보다 풍요롭게 가꾸도록 하겠습니다.

단테스뷰 정상에서 내려와 도로를 따라 한창 달리던 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진 에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처음에 봤던 단테스뷰 이정표가 다시 보였다.

Shit! Wi-fi is not working!

잠시 차를 세우고 에드는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되던 내비게이션이 어느 순간 완전히 끊어졌다.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았고 차량은 순식간에 경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계속 같은 도로를 맴돌다 결국 처음 왔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설상가상 차의 엔진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알피엠 계기판에 경고 수치가 뜨면서 20km 이상 속력을 낼 수 없었다. 에어컨까지 껐지만 엔진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차는 탈탈거리는 소음과 희뿌연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더위 먹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얼음 알갱이 같은 것들이 사방에 흩뿌려진 평지가 나타났다. 한때 바다였던 데스밸리 중 가장 낮은 저지대인 베드워터였다. 흰 얼음 알갱이처럼 보이던 것은 다름 아닌 소금이었는데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그런데 그 부근에 생뚱맞아 보이는 허름한 통나무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이런 곳에 캠핑존이라니. 다소 의아했지만 우린 그곳에 차를 세웠다. 주변을 경계하며 통나무 입구의 낡은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스르륵 문이 열리자 건물 내부로부터 차가운 에어컨 냉기가 밀려나왔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전면으로 보이는 데스크와 구석에 세워진 낡은 기념주화 뮤직 박스가 전부였다.

데스크에는 한 노년의 남자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반쯤 잠들어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그는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투명하지만 나른해 보이는 푸른 두 눈동자가 우릴 경계하듯 쳐다봤다. 빛바랜 황금빛 실타래처럼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한데 어지럽게 얽혀 있었고 축 늘어진 티셔츠는 이를 데 없이 낡아 보였다. 수분이 바짝 마른 피부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퍼져 영락없이 생기를 잃은 마른 선인장처럼 보였다.

헬로우!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웹북 『데스밸리 판타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푸에고 로사』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데니의 얼음동굴』 『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출간​ 

 

sky_ist@naver.com

 

데스밸리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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