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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들의 축제

소설 단편

방성식 2023-05-21

ISBN 9791192211817(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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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이후, 짧은 직장 생활 시기를 제외하면 나는 대부분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고, 지금은 완전히 재외국민으로 정착했다. 나를 이렇게 소개하면 꽤나 적극적인 성격에 자유분방하면서도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일 것 같지만,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나는 사교 모임보다는 방구석에 고립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고, 단골 카페가 아니면 커피 원두를 사지 않는 편협한 취향에, 즐겨 다니던 식당도 사장님이 기억하고 챙겨주면 불편해서 못 가게 되는 등, 신경 쓰일 만큼 손이 가는 성격이다.

한때는 어울리지 않는 시도로 이러한 나의 성향을 바꿔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 끝에 지금은 이렇게 태어난 자신을 받아들이고 분수에 맞게 살자는 체념에 빠져 있다. 물론 가슴 한구석에선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인싸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곧 그 애정의 무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리고 만다. 내가 나인 것을 어쩌겠나?

하지만 소설 쓰기는 다르다. 매번의 창작마다 고무줄을 허리에 묶고 전력 질주하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탄성에 끌려 되돌아오지만, 앞으로 나아간 길이는 현실에 고정된 나로부터 벗어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써 온 것들 중 가장 멀리까지 달린 기록이라는 점에서 흡족하다. 현실이었다면 내리지 못했을 결심과 선택, 그리고 만나보지 못한 감정들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카리브의 섬나라에서 수많은 연인들과 행진에 나서는 나. 그것은 또 어떤 삶일까.

반어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예측이 가능한 까닭에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다. 전에 만난 외국 여성 상당수는 극단적 채식주의자이거나 동물권 운동에 전념하는 환경론자들이었고, 다자간 연애를 옹호하는 것에 더해 생태계 보존을 목적으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걸핏하면 노브라에 탱크톱 차림이라 가까운 지인에게 소개하기조차 난감했다. (어디까지나 내 시각에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그들과의 만남은 어처구니없는 입장 차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인을 만나기엔 월 이백도 채 안 되는 임시 조교 돈벌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대한민국 기준선에 미달한 연애 상대로서의 내게 미카엘라는 평범함에 녹아드는 특별함을 선사했다. 시험 삼아 만들어본 커플계는 순식간에 순 팔로워 이만 명을 돌파했고, 사람들의 호기심과 응원의 글, 질시의 코멘트가 꼬리처럼 따라왔다.

‘응원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만나세요.’ ‘언니 너무 예뻐요 오빠도요.’ ‘역시 갓 양녀 흑누나가 진리다.’ ‘인기 없는 인종끼리 만났네 ㅉㅉ 불쌍하다.’ ‘몸매 지린다 정액은 남아 나냐?’ ‘누나! 한남 꼬추 느껴지긴 해요?’ ‘솔직히 한국 여자 왜 만나냐? 찌찌도 작으면서 돈만 존나 밝히는데.’ ‘깜둥이는 냄새나서 별로 공짜로 줘도 안 사귐.’ ‘능력남이시네요 재무 설계해 보세요.’ ‘안전한 놀이터 소개합니다. 추천인 코드……’

정신 나간 댓글 창에 어이없어하던 미카엘라도 나중에는 이런저런 기획으로 협찬까지 유도했다. 덕분에 커플 잠옷이나 칫솔 같은 잡동사니까지 생겼으나, 그보다 더 자주 받은 메시지는 하룻밤에 얼마냐는 스폰서십 제의였다. 수차례나 박제하고 차단해도 아이디를 바꿔가며 집요하게 연락했다. 그건 남자친구인 나로서도 기분 나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미카엘라가 자는 사이 모든 SNS 계정에서 탈퇴해버리고 싶었다.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장르소설집 『남친을 화분에 담는 방법』, 여행 에세이 『냉정한 여행』 출간 

웹북 『현관이 사라진 방』 『채찍들의 축제』 『이별의 미래』 『만년필에 대하여』 출간

 

linktr.ee/bbangaa

qkdrntlr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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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채찍질을 당한 것처럼 강렬한 후감 상수리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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