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세계와 갈 수 있는 세계는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계 간의 연결이 내 존재를 증명하는 논거이며,
계들 간의 연결이 끊어지면 나는 모든 장소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런 상상대로라면 나만의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 세계와 이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
단, 나만의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게 있다.
세계 간의 충돌에서 살아남는 것.
1929년 경성에서 벌어진 시체 수의(壽衣) 도굴 사건.
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계천지(異界天地)’ 편집장 김묘성을 쫓다 보면,
세계 간의 충돌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숙부는 아침에 경성전화국 교환원이 몇 번이나 잘못 연결했다면서 전화로 내게 씩씩거렸다. 난 숙부가 밤새도록 노름하다 돈이 필요해 다급히 연락했거니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숙모의 수의가 벗겨졌다”라고 말하는 숙부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숙부는 폐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숙모에게 올이 가늘고 빛깔이 으뜸이라는 안동포 수의를 마련해줬다. 이 수의를 장만했을 때의 숙부 표정은 살아 있는 숙모에게 옷을 선물할 때보다 더 뿌듯해 보였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간 숙모의 수의가 벗겨졌으니, 숙부는 여러모로 분노와 치욕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숙모의 두 손은 마치 저항이라도 했었는지 가슴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다. 손가락을 꽉 움켜쥔 숙모의 손아귀는 살아있을 적보다 억세 보였다. 수의를 빼앗긴 숙모의 몸을 만지는 건 망설여졌으므로 관 밑쪽보다는 뚜껑 뒷면을 살폈다. 뒷면에는 한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이 한지에는 귀신 귀(鬼)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원래 붙어 있었나?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려고?
“영산을 이리 파헤쳐서야. 쯔쯔쯔.”
고개를 들자 밝은 갈색 중절모를 쓴 사내가 무덤 밖에서 날 내려다봤다. 그는 무덤 밖으로 침을 뱉더니 쪼그려 앉았다. 이 사내의 중절모 위로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렸다. 중절모 챙 끝에 맺힌 땀방울은 빛을 굴절시켰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현장 보존 모르세요?”
사내는 내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긴 아직 ‘과학 수사’라는 걸 알 리가 없지.”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서 「제니의 역」으로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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