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화는 경주의 서쪽 초입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다. 신라의 여러 전설 속에도 지명이 등장하는 이 마을의 특징은 철도, 고속도로, 산업도로, 일반국도가 모두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 <아화>를 쓰는 동안 위의 네 가지 ‘길’을 모두 이용해 아화에 도착하기도 했고 아화를 지나쳐보기도 했다.
분명 이 마을에 글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부터는 아화의 오래된 골목을 걸어 다니며 형상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어떤 여성의 모습을 찾는다는 심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것은 ‘없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격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작품 속 ‘김유민’의 심정을 헤아려보고자 하는 일종의 답사였을 것이다.
물론 그 일정의 대부분은 고도(古都)의 변두리에서 좀체 뻗어나가지 못하는 내 소설의 자장(磁場)에 하염없는 짜증을 부리다가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몇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아주 느리게 조금씩 글을 완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만성질환자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
찬바람이 부는 길에서 머뭇거리며 완성한 소설이라 여전히 애착이 많이 간다. <아화>가 멋진 콘텐츠로 제작되어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스토리코스모스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글 같은 거 되도록 쓰지 말고 살아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이 너무 많으면 삶이 싫어지는 법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이 말은 하나의 엄한 기율(紀律)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18살, 그날 밤 기억의 얼개를 수백 번이나 뒤집었다. 물론 소설을 쓰기 위함이었다. 기억은 마당에 켜켜이 쌓이던 안개 같은 순진함으로 포장되었고, 화장수의 냄새가 풍겨오던 오후의 나른함으로 미화되었다. 이렇게 가공된 기억의 고리를 연결하는 도구는 나의 서글픈 결핍, 바로 모성이었다. 모든 것은 사실이기도 했고 또 거짓이기도 했다. 사실인 것을 거짓으로 바꾸기 위해, 거짓을 사실인 척하기 위해 나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막 단풍이 든 부인사 경내를 산책하고 돌아온 날부터 평년에 비해 며칠 늦은 첫눈이 오기까지였다.
문제는 내게 보이지 않았던 어느 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벌어지고야 말았다. 바로 ‘불’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는 동안 기역자 기와집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불에 대해 참으로 오래 생각했다. 내 기억이 소설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불은 반드시 의미를 담아야 하는 사건이었다.
내 소설 속 인물은 그 화재를 계기로 아화를 떠나야 했고 훗날 그 화재의 이면을 알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그렇게 쓰고 싶었다. 화재는 그토록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절대 ‘우연’이라는 단서를 붙일 수는 없었다. 반드시 인과의 고리를 엮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나는 불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문학에스프리≫에 소설 당선,
2019년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당선
단편집 『언터처블 내 인생』, 평론집 『허구와 일상의 사유』,『소설로 읽는 판타지』등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