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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오지 않는 것

소설 단편

강이라 2023-12-24

ISBN 979-11-93452-14-1(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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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오지 않는 것. 이 소설은 실화입니다.
작년에 저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재소자들을 상대로 비대면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흉악범, 강력범, 사회 부적응자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는 이모지 처리를 했음에도 실명으로 드러나는 제 이름과 직업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매주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제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고 만들어 보낸 워크북에 성실히 대답했습니다. 매우 솔직했고 몹시 순연한 글이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글에 박힌 생의 편린은 조각조각 차갑게 빛났습니다.
안부가 궁금한 그들에게 저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씁니다.
이 소설이 그 편지입니다.
어디에 있든 잘 있기를 바랍니다.

수감 번호 6719- 권수양

앞선 네 명과 달리 권수양은 수감 번호 뒤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었다. 재소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밝히는 걸 꺼릴 게 틀림없는데 권수양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사를 받으면 돌려주는 것을 생래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상대가 내민 오른손이 무안하지 않도록 일단은 그 손부터 잡는 사람이 아닐까. 주고받는다는 의식 없이.

권수양의 그림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성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 세 개를 가로로 나란히 그린 게 그림의 전부였다. 나는 활동 제목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당신의 고향을 그려보세요.

나는 이내 그림에 오류가 없음을 알았다. 정사각형 세 개 안에는 글이 쓰여 있었다.

첫 번째 사각형- 나의 고향은 빈집
두 번째 사각형- 나의 고향은 소년교도소
세 번째 사각형- 나의 고향은 여성교도소

세모 지붕도 없이 사방으로 막혀 있는 작은 집, 열고 나갈 문이 없어 막막한 작은 방. 그 집의 이름은 빈집, 소년교도소, 여성교도소. 권수양은 그곳을 자기 고향이라 불렀다. 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손목을 명치 아래 대고 깊이 누르며 숨을 길게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회색 벽에 드리운 마름모꼴 창 그림자를 보았다.

거리 두기 하지 않으면 마음 다칠 수 있어. 위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두 팔을 책상에 올리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이 젖어 들었다.

2012년 신라문학대상 소설 당선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9년 현진건 문학상 추천작 수상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 소설집 『웰컴, 문래』 

앤솔러지 『나, 거기 살아』, 『당신의 가장 중심』, 『작은 것들』, 『쓰는 사람』 공저

 

zeromy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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