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그가 나무인형이라는 진실에 대하여

소설 단편

도재경 2024-02-25

ISBN 979-11-93452-26-4(05810)

  • 리뷰 1
  • 댓글 0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몇 해 전 외국인 학생 한국어 프로그램 도우미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만난 친구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고, 국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점잖았다. 그리고 맥주를 꽤 좋아했다.

그가 나를 만나 얼마나 한국어 실력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만나 꽤 많은 종류의 맥주 맛을 알게 되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우리는 빈 잔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맥주를 마셨다. 그는 내게 주량이 센 것 같다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라, 이 친구의 반듯한 코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는 자신의 고향 미니애폴리스 주인은 모기라며 연신 웽웽거렸고, 나는 테이블과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코를 찾았다.

이게 뭐지?

며칠 후, 그날 밤 그토록 찾던 그의 코를 메모장에서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날 본 현실의 일부다.

민제는 대뜸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라며 휴대폰을 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회백색 벽돌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갈색 머리 남자는 비모 또마, 자신의 아버지라고 했다. 또마는 군청색 멜빵바지 차림의 자그마한 나무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모종삽과 하얀 모래가 가득 실린 장난감 트럭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그 어디에도 민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나야.”

민제의 손가락은 나무 인형을 향해 있었다. 그 사진은 자신의 어머니인 끌로에가 찍어준 사진이라고 했다. 나는 멀뚱히 민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못 믿는 눈치네. 내 코를 봐, 그대로잖아.”

프랑스식 농담인가? 나는 울퉁불퉁한 나무 인형을 보며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연신 헛웃음만 지었다. 민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지와 검지로 사진 속 나무 인형의 오른쪽 팔 부위를 펼쳤다. 검게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어릴 때 불장난을 하다가 타버려서 또마가 너도밤나무를 깎아다가 붙여주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민제는 대뜸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팔꿈치에 깊은 흉터와 함께 화상 자국이 도드라져 있었는데 마치 목질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수라도 쳐 줘야 하나. 자기소개치고는 퍽 인상적이었다. 민제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던 탓에 피노키오의 국적이 프랑스였나 헷갈릴 정도였으니. 어쩐지 순탄치 않은 학기가 될 것만 같았다.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피에카르스키를 찾아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소설집 ​별 게 아니라고 말해줘요​를 펴냈다.

2020년 심훈문학상, 2021년 허균문학작가상을 받았다. ​ 

 

soul2007@hanmail.net​

그가 나무인형이라는 진실에 대하여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당신도 혹시 나무인형이 아니신지요? 호미잼아 2024-05-09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