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낙서인 서열 국민투표 - 율려국 낙서견문록1

소설 장편 분재

김종광 2024-06-02

ISBN 979-11-93452-38-7(05810)

  • 리뷰 0
  • 댓글 3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필자는 한때 『율려낙원국』이란 두 권짜리 역사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모티브로, 허생이 도적떼들을 모으고 율려섬에 가서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이러저러해서 『율려낙원국』의 후속편을 쓰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갖고 살다가 그 ‘율려낙원국’의 현재를 담은 메타판타지풍자소설 연작을 기획하게 되었다. 그것이 연작장편소설 『율려국 낙서견문록』이다.

그 첫 편을 「문학과 사회」에 발표했을 때, 필자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한바탕 쏟아내서 즐거웠지만, 살짝 두려운 게 사실이었다. 한국 소설가가 낙서와 매춘의 나라 율려국에 취재차 다녀온다는 이야기인데 황당한 발상도 문제지만 제 발 저린 문장들이 많았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여러 사람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특히 비평가분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그 첫 소설이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율려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끌어들인 해학적인 상황 설정, 우리 문학계와 출판계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시를 던져준다.’는 게 우수상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이런 비판적 어조의 소설을 받아들이는 품성이 아직 우리 문학판에 남아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연작을 계속 진행하게 되고 이제 스토리코스모스에서 그것을 완결하게 되었다. 창작 동기를 떠나 독자님들께서 가볍고 즐겁게 이 연작소설들을 읽어 주시기 바란다.

“아, 잔인하군요. 이 나라에는 표현의 자유도 없단 말입니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정부당국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게 문제였습지. 댁도 한번 해보십지. 어떻게 되납. 당신네 나라에서도 연예인이나 스프츠맨이 자서전이다 시집이다 해서 책 내는 일 많습지? 댁이 그들이 쓴 건 글도 아니라거나 혹 글이면 대필일 거라고 떠들어봅지. 댁이 무사할 것 같습? 표현의 자유, 그거 웃기는 것입지.”

“그럼 나머지 수준 높은 낙서인들은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까? 아무도 그 기자를 두둔하거나, 국민의 집단 광분을 우려하거나 질책하지 않았습니까?”

“했습지. 우리 율려 낙서인들을 무시하지 맙지. 열두 명이나 되는 원로, 대가, 중견, 신예 낙서인이 그 기자를 옹호했습지. 그 기자도 꽤 촉망받는 신진 낙서인이었으니깝.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되지 않았습지. 그 열두 명도 국민들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거, 불태워 죽여야 한다는 위협 말입지, 모두 대국민사과를 하고 영원히 절필하겠다며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지.”

“어떻게 그런 일이!”

“그 열두 명 모두 본격낙서계열 낙서인이었습지. 나머지 낙서인들, 그러니까 대중낙서계, 판타지무협낙서계, 인터넷낙서계, 영향력낙서계에 속한 낙서인들은 침묵하거나 외려 국민들 편을 들었습지.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김에, 진정 좋은 낙서가 어떤 것인지, 진정 훌륭한 낙서인이 누구인지 고찰해보자, 하는 식으로 말입지. 무작정 광분하던 국민들은 표류 끝에 섬을 본 것처럼, 그 화두에 몰입해버렸습지. 그러다가 영향력낙서계 쪽 핵심 인사 하나가, 바로 이번 투표관리위원장을 맡은 돌개바람씬데 말입지, 국민투표를 제안했습지. 이 제안이 며칠 만에 대세가 되었고, 전 국민의 데모에 못 이긴 정부는 결국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것입지.”

슬픈사슴이 덧붙여 말했다.

“오늘 우리 젊은 친구들이 반대집회에 오지 않은 것은 사실, 두려워서일 것입지. 우린 국민들이 무섭습지. 실은 보름 전에 한 번 반대집회를 열었습지. 그날 경찰이 아니라 국민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열세 명이 중상을 입고 이백쉰여섯 명이 경상을 입었습지. 우리가 경찰한테 얻어터졌다면 계속 투쟁을 했을 것입지. 그러나 우린 국민들에게 맞았단 말입지.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독자들 말입지.”

나는 갑자기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 불행한 율려국의 젊은 문학인들을 보라. 나는 얼마나 좋은 땅에 태어나 행복하게 문학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문학하며 맛보았던 슬픔, 분노들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로 데뷔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놀러 가자고요』 『성공한 사람』,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죽음의 한일전』, 청소년소설 『처음 연애』 『착한 대화』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군대 이야기』 『첫경험』 『똥개 행진곡』 『왕자 이우』 『별의별』 『조선통신사』 『산 사람은 살지』,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웃어라, 내 얼굴』, 기타 『광장시장 이야기』 『따져 읽는 호랑이 이야기』 등이 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특별상(2019), 류주현문학상(2019) 제비꽃서민소설상(2008), 신동엽문학상(2001)을 받았다. 

 

kckp444@hanmail.net

낙서인 서열 국민투표 - 율려국 낙서견문록1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