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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터

소설 단편

방성식 2024-08-11

ISBN 979-11-93452-64-6(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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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엔 이상한 체험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우엔 파면 팔수록 공포물만 나온다. 딱히 삭막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아쉬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납량특집도 잘 안 보인다. 귀신보다 사람이 겁나는 시대라 그런 걸까. 그래도 나는 귀신 이야기가 좋다. 사람이 나쁜 이야기는 화가 나서 더워지는 반면, 귀신들의 사연은 체감 기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의 시대, 에어컨을 켜는 대신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어떨까?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이 소설은 내가 겪은 실화가 모티프다. 20대 중반의 나는 통신 장교로 복무했었는데, 직무 특성상 숲속에서 근무를 설 때가 잦았다. 한밤중, 혼자 무전기의 노이즈를 듣다 보면 인간과 다른 시선, 다른 방식의 말, 해괴한 상식을 가진 것들의 대화가 귀에 들리곤 했다. 덕분에 가장 무서운 건 사람도, 귀신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포물의 클리셰이기는 하지만, 클리셰는 힘이 세다. 이건 실화에 기반한 소설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한 소리가 났다. 성긴 비로 흙바닥을 쓰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바람이 흐르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귀를 기울일수록 족적에 가까워졌다. 스윽- 슥- 스윽- 슥 바닥을 딛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다리는 앞뒤로 두 쌍. 이족보행 하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조정간을 단발로 놨다. 코끝에서 악취가 났다. 바람에 섞인 비린내였다. 이끼와 똥, 음습한 숨이 섞인 체취였다. 놈과의 거리는 50미터 내외, 셸터 밖의 어딘가를 헤매는 듯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어쩌면 우리에서 나온 맹수일 수도 있다. 이곳엔 위험한 짐승이 많았다. 들개와 표범, 늑대는 물론, 악어와 물소, 캥거루도 있다. 놈들이 벽을 부수는 건 어렵겠지만, 개중엔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도 있다. 몸이 작은데도 의외로 힘이 센 놈들이다. 셸터로 침입해 물건을 훔치거나 자는 틈에 목을 조를 수도 있다.

꼴깍,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하늘에선 월광이 비쳤다. 창백할 정도로 쨍한 반쪽짜리 달이었다. 밝은 달빛에 돌바닥의 윤곽이 튀어 올랐다. 그림자 사이로 새카만 등이 드러났다. 짧은 털에 둥근 어깨, 어정어정 배회하는 맹견처럼 보였으나, 구부정한 자세는 인간의 신체를 베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점차 사람처럼 변했다. 납작한 머리는 모자처럼, 갈퀴 같은 손은 연장처럼 변했고, 전신의 털도 옷처럼 변했다. 가늠쇠 울은 사정없이 떨렸다. 총을 잡은 양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건 인간인가 짐승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괴물인가.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장르소설집 『남친을 화분에 담는 방법』, 여행 에세이 『냉정한 여행』 출간 

웹북 『현관이 사라진 방』 『채찍들의 축제』 『이별의 미래』 『만년필에 대하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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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kdrntlr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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