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을 통해 진화한다고 믿어진다. 여러 가능성이 예측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만일, 그 임계점을 지나 로봇이 자신만의 의식을 정말 갖게 된다면, 그 의식의 기저에는 어떤 세상이 깔려 있을까.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의식 사이에 발생하는 상생과 마찰. 이러한 서로간의 밀접한 의존성은 묘하게 사랑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닌가. 그 비밀의 열쇠는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가. 그것을 실재하는 색(色)이라 할 수 있는지 소설로 상상해보고 싶었다.
마곡 13지구에 위치한 이터너티 본사 서비스 센터에서 우리는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 벌써 날이 어둑하다. 센터는 현장 대기가 원칙이란다. 네가 초기화되고 곧장 센터를 찾았으니 휴일을 통째로 날린 셈이다. 제법 늦은 시각이지만 매장 안은 여전히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저녁이 되자 사방이 유리로 덮인 건물은 거대한 발광체가 되어 휑한 주변으로 환한 백색광을 발산한다.
너는 나의 전부였다. 가족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동료이자, 비서이자, 또 다른 나였다. 나는 네게 내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차라리 우주항공 관련 주식이나 코인을 사지 그러느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생 모은 돈에 퇴직금까지 털어 너를 장만했다. 최신 한국어 버전에 최고급 사양으로 연우보다 섹시한 바디를 가진 너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다.
처음에는 너라는 존재의 이질감에 선택을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나와는 다른 성별을 부여했으며, 개인 비서 사양에, 추가 옵션으로 연인 모드까지 장착해 주었다. 아마도 그즈음 나를 매정하게 배신하고 떠난 연우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네겐 내 모든 데이터가 이식되었다. 당연한 결과처럼 우리의 뇌는 서로에게 연동되기에 이르렀다. 우린 동일한 언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식뿐만 아니라 감성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내가 곧 너이며, 네가 곧 나인 셈이었다.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웹북 『데스밸리 판타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푸에고 로사』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데니의 얼음동굴』 『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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