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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주기

소설 단편

안지숙 2024-11-17

ISBN 979-11-93452-81-3(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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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이게 울 일인가 싶은 장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지 삼사 년 됐다. 그 무렵 특별히 괴로운 사건이나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은 없다. 굳이 연유를 찾아 더듬어보니, 철들면 끝장이라는 예능인도 아닌데 철들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내가 액면가 바보였다는 깨달음과 거부가 도피의 다른 말이었음을 인정하면서 돌아보게 된 과거가 손끝에 티눈처럼 짚였다. 내가 쓰는 소설은 내 생에 버섯처럼 돋아나는 티눈을 문대는 거였구나. 세상에, 지금 막 알았다.

“슬퍼 보여요. 처음 봤을 때부터 슬퍼 보였어요. 저 사람 되게 슬픈 사람이구나, 했습니다. 사람 신경 쓰이게…… 그런데 다들 그러잖아요. 인간이라는 게 원래 슬픔을 안고 사는 존재라고요.”

도마장이 어르는 투로 말했다.

“슬픔은 한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의 총합 같은 걸 거예요.”

순영이 말했다. 감정이 스며든 시간의 축적은 슬픔일 거라고, 슬픔의 이미지는 무덤과 닮았을 거라고 순영은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한 생애의 뒤안길이 다들 슬픔으로 채워져 있겠군요.”

도마장이 말했다. 졸리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인지 그가 겪고 버리고 쌓아온 시간으로부터 슬픔의 너울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너울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덩어리가 빵부스러기로 지저분해진 도마에 내려앉는 것을 순영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순영의 마음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순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모르는 슬픔은 없어요. 모든 슬픔에는 그리움이 배어있고, 우리는 다 그리워하고 사니까…… 그 그리움의 끝이 결국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어떻게 해도 부끄럽고 슬퍼서 울었던가 봐요. 내가 애도한 게 소년이었는지, 아니면 나였는지…… 무언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그리워할 수도 울 수도 없는 내가……”

순영의 말이 자꾸 끊겼다. 순영은 자신이 뱉어놓은 말을 후회하는 양 울상을 지었다. 도마장은 더부룩한 수염 속의 입을 비죽이 내민 채 잠자코 있었다. 순영은 짧게 한숨을 뱉고 가방에 손을 뻗었다.

“이제 갈게요.”

2005년 신라문학상 수상 등단

2023년 부산작가상 수상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장편소설 『데린쿠유』, 『우주 끝에서 만나』, 『스위핑홀』 

앤솔러지 『모자이크, 부산』 『그녀들의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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