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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석 소설집

웹북 단행본 선택안함

엄창석 2025-05-25

ISBN 979-11-94803-07-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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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지금 이 시대에 문학이 왜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소설집을 내놓을 것이다.

-홍기돈(문학평론가)

흔히 하는 말로, 단편소설은 글로써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양식이다. 그러다 보니 한 작가에게 문학 미학의 정수이고 집념의 결정이며 걸어온 궤적의 지도이다.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짓이라는 보르헤스의 전언까지는 동의 못 하더라도 단편소설이 저마다의 기법과 유희와 정념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집약체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나는 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시대적 경향이 강한 단편을 쓰곤 했다. 시대마다 고유하고 특수한 진실이 있다는 동시대적, 혹은 고현학(考現學)적인 미신에 홀려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단편들, 이를테면 공장 파업, 시위, 후일담을 다룬 작품 따위들은 애꾸눈 조랑말이 끄는 마차에 실려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내 소설이 흐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에 좀 퇴색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바로 여기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이 그것들이다.

「몸의 예술가」는 불교 등에서 말하는 윤회의 의미에 천착해서 쓴 소설이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거울」에서는 탐정소설의 형식에 환상을 가미하여 존재의 미로를 드러내고자 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마경을 결합시킨 것은 아마 관념의 유희일 것이다. 「쉰네 가지 얼굴」은 체제에 순응하지 못한 범죄자의 끝없는 도주에 관한 이야기다. 글을 쓰는 동안 카인 이래로 무수한 도망자들, 가령 람피앙, 카루소, 일지매 같은 이들이 내 곁에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해시계」와 「비늘 천장」은 조선조를 시대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해시계」는 메타소설과 무관하지 않다. 독자는 거기서 상징주의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늘 천장」에는 「쉰네 가지 얼굴」만큼 작가로서의 나의 의식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쓰는 동안 아팠다.

이 여섯 편의 소설을 스토리코스모스에서 웹북 단행본으로 묶어준다고 하니, 기쁘고도 송구스럽다. 앞으로 좀 더 힘을 모아 더 나은 소설을 쓰겠다고 약속드린다.

긴 글을 써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글을 쓰는 재주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손에 잡고 있는 볼펜 끝으로 사라진 밤과 낮들이 화르르 모여드는 것이었다. 기억은 무섭게 질주하는 얼룩말 같았다. 희고 검은 줄무늬들이 빠른 속도를 내며 다가와 노트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는 마구 글을 써나갔다. 어떨 때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적어 내려갔다. 그는 지난날들이 한 토막씩 문자로 변할 때마다 자신의 삶이 한 토막씩 살아나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고 느꼈다. 69번 도로에서 산으로 올라와 구덩이를 파는 날까지 이르면 이윽고 자신의 몸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말할 수 없이 이상한 현상을 경험했다. 손톱 밑에 든 동상(凍傷)이 오히려 뜨겁게 느껴졌고 구덩이 안의 어둠은 여린 빛들을 모아 노트 위에 비추어서, 그리 캄캄하지 않았다. 탈옥 전후의 숨 막혔던 시간과 체포를 면하게 된 기적적인 순간들을 옮겨놓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썼을 때만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기묘한 감정을 혼자서 주고받았다.

“휴우, 개 같은 짓이야.”

김을룡은 벌떡 일어나서 녹차캔을 집어던졌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화살과 구도」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슬픈 열대』,『황금색 발톱』,『비늘 천장』, 장편소설 『빨간 염소들의 거리』, 『태를 기른 형제들』,『어린 연금술사』,『유혹의 형식』, 산문집 『개츠비의 꿈』이 있다. 한무숙문학상 수상.

 

padong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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