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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

웹북 단행본 선택안함

김종광 2025-12-15

ISBN 979-11-94803-60-7(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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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의 작가로 고유의 개성을 심화시켜온 소설가 김종광의 장편소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대한민국 소설사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장르적 특성과 내용을 담고 있다. 이십여 년에 걸쳐 완성된 이 소설에 바쳐진 작가의 노고와 도전은 오롯이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은 현실과의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작가적 삶의 내적 고뇌를 거름으로 삼은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사회를 직접 거명하지 않지만, 가상의 나라 율려국의 인물들, 조직들, 언론, 정치 구조, 심지어 문학계 내부의 병폐는 철저하게 한국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율려국 거울을 마주한 독자는 불편함과 동시에 웃음을 피할 수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웃기게 쓰였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사회 풍자극이다. 허구라는 가면을 쓰고, 너무나 구체적인 현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율려국은 단지 하나의 상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장화된 은유이자 문학적 저항이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은 단순히 창작자의 고뇌를 그리는 메타픽션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서 끝내 확신하지 못하는 자의 통렬한 자기성찰적 기록이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 모든 것에 대한 메타판타지풍자 장편소설.

필자는 2007년 『율려낙원국』이란 두 권짜리 역사소설을 출간한 바 있다.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모티브로, 서기 1771~1772년, 허생이 도적떼들을 모으고 율도로 건너가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렸다. 『율려낙원국』의 후속편을 시리즈로 기획했으나 이래저래 진행하지 못했다. 다만 그 ‘율려낙원국’의 현재를 담은 메타판타지풍자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연작 장편소설 『소설가 소판돈의 낙서견문록』이다.

그 첫 편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를 계간 『문학과 사회』에 발표했을 때, 필자는 하고팠던 말을 한바탕 쏟아내서 즐거웠지만, 살짝 두려웠다. 한국 소설가 소판돈이 낙서와 매매춘의 나라 율려국의 국민투표를 취재하는 이야기인데 괴팍한 발상도 문제지만 제 발 저린 문장이 수두룩했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여러 사람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특히 비평가분들께 송구했다. 한데 그 단편이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율려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끌어들인 해학적인 상황 설정, 우리 문학계와 출판계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게 우수상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비판적 어조의 소설을 받아들이는 품성이 아직 우리 문학판에 남아있었다.

자신감을 얻어 후속 세 편은 문예지에, 두 편은 스토리코스모스 웹북으로 발표했다. 스토리코스모스는 여섯 편 개별본 웹북, 전체본 웹북 출간에 이어, 전체본을 다듬은 이 종이책 장편소설 출간도 맡아주었다. 스토리코스모스 운행자 박상우 선생님께 감사를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반어, 풍자, 입담을 합한 말이 해학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해학으로 우리 문학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질문해 보고 싶었다. 답이 아니라 물음이다. 소설 독자는 지구 지킴이이며 인류 수호자다. 독자님들이 소설의 튼실한 전파자로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소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창작 동기를 떠나, 독자님들께서 일단 가볍게 즐기셨으면 좋겠다. 소설이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탄생했고 발전해 온 건 분명하니까.

마침내 나는 최강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얻었다. 이제까지 나왔던 그 어떤 AI보다 똑똑한 놈이랬다. 챗지피티보다 백배는 빠르고 정확하고 쌈빡하다고 했다. 이름도 무려 ‘초인’이었다. <‘초’월적 능력의 ‘인’공지능>을 줄인 말이랬다.

“초인아, 율려국의 역사를 써줘. 낙서문학사를 중심으로 써줘. 율려국 260년 역사를 율려국의 정수였던 낙서문학을 중심으로 써달란 말이야.”

“직접 쓰십시오. 저 같은 기계에 의지하는 글은 좋지 않습니다.”

“나 이제 글 못 써. 어찌저찌해서 독자인권위원회에 사과문을 보냈어. 내가 진짜 잘못했다고, 율려국에 대해 쓴 잡문은 다 안 살려줘도 되는데 소설은 죄가 없지 않으냐, 소설은 살려달라, 그리고 소설은 좀 쓰게 해달라, 소설가가 소설 안 쓰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 막 절절히 비는 글을 열 번인가 보냈어. 그랬더니 소설도 살려주고 신기하게 소설 청탁도 들어오더라고.

근데 진짜 글이 안 써지는 거야. 한 문장 쓰고 검열을 해. 내가 지금 쓴 문장이 ‘독자 누구나 성별, 학력, 국적, 나이, 장애, 종교, 성적 지향성 또는 정치적 성향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는 원칙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단어 하나 쓰고 이 단어가 음란한 거 아닐까. 문장 하나 쓰고 이거 동료 작가와 독자를 모욕한 거 아닐까 고민한다고. 글만 그런 게 아니냐. 모처럼 글쓰기 특강을 갔는데 거기 가서도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됐어.

결혼을 잘해서 다행이야. 아내가 돈 벌고 나는 살림해. 글 안 써서 너무 행복해. 소설, 그거 나 같은 인간까지 안 써도 되는 거더라고. 해마다 축복처럼 위대한 신예 소설가가 별처럼 탄생하는 나라에서 나 같은 인간은 안 쓰는 게 좋아. 이미 쓴 것만으로도 나무한테 너무 죄송해. 그렇지만 슬픈사슴의 유언을 들어주고 싶어. 내가 못 쓰니 네 힘을 빌리려는 거야.”

초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하군요. 그럼 뭐라도 줘보세요. 뭐라도 줘야 쓰지요.”

“인터넷에 잔뜩 있잖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율려국에 있을 때 인터넷에 웬만한 거 다 있었다고. 율려 인터넷은 율려 낙서로 도배되어 있었다고.”

“율려국이 어디인가요? 낙서는 뭘 말하는 건가요? 주문 사항을 정확히 입력해 주세요.”

“너 초인 맞아? 왜 해보지도 않고 없다고 그래?”

“진짜 없습니다. 인간님.”

“야, 나도 인터넷 할 줄 알아. 그런데 내가 하면 안 된다고. 각 정부에서 율려국 사이트에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거 같아. 다른 나라 사이트 뒤져도 안 나온다고. 여러 나라 부자들이 작당해서 율려국 먹을 때 뭘 어떻게 해놓은 모양이지. 하지만 넌 초인이잖아. 넌 어떻게든 할 수 있잖아.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대만 정부 기관 사이트 다 들어갈 수 있잖아? 거기에는 있을 거라고.”

“없습니다. 율려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습니다. 낙서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인간님 혹시 제정신입니까?”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로 데뷔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놀러 가자고요』 『성공한 사람』,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 『죽음의 한일전』, 청소년소설 『처음 연애』 『착한 대화』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군대 이야기』 『첫경험』 『똥개 행진곡』 『왕자 이우』 『별의별』 『조선통신사』 『산 사람은 살지』,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웃어라, 내 얼굴』, 기타 『광장시장 이야기』 『따져 읽는 호랑이 이야기』 등이 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특별상(2019), 류주현문학상(2019) 제비꽃서민소설상(2008), 신동엽문학상(2001)을 받았다. 

 

kckp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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