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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나 구라

소설 단편

명희진 2026-05-17

ISBN 979-11-94803-85-0(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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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픽 포인트

종교 공동체 내부의 순결 이데올로기와 죄의식 구조가 여성의 몸과 기억을 어떻게 식민화하는지를, 블랙 마돈나의 “복원되지 않은 상처”라는 상징을 통해 탐문한 심리 리얼리즘 계열의 단편소설.

“상처를 복원하지 않는 성모”와 “치유되지 않는 인간의 기억”을 병치한 구조는 작품의 가장 강력한 성취다. 종교적 죄의식, 여성의 몸, 기억과 트라우마, 공동체 폭력이라는 주제를 높은 상징 통제력과 감각 밀도로 구현한 수준 높은 작품.

‘우스 땅의 욥, 그의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었다.’

욥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로 끝난다.

처음에 열이 죽고, 마지막에 열이 다시 태어난다.
신은 그에게 같은 수의 자식을 돌려준다.

나는 늘 이게 의문이었다.
시련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 잃어버린 것을 대신할 수 있는지.

나는 가끔 욥이 우는 꿈을 꾼다.
그림자도 없는 곳에서, 그는 운다.
그가 잃은 열 명의 자식이 그리워서.

그해 여름 그들은 순결 서약을 했다. 은정은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등부 여학생 하나가 순결 서약을 거부한 후에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여학생이 임신했고 아이를 지웠다는 이야기가 한 주 만에 교회 전체에 퍼졌다. 소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진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은정은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서약서에 서명했다. 축제 같던 그날, 그녀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저당 잡힌 기분이었다. 육체적 순결을 서약하는 그 행위가 폭력적이었지만, 그녀는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여러 날 곱씹은 문장을 삼켜야 하는 그 상황이 잔인했지만, 이 또한 드러낼 수 없었다.

서약 이후, 재훈과 은정은 가벼운 포옹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한 이브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재훈은 적당한 선에서 자제할 줄 알았고 자신이 이브의 꾐에 넘어가는 아담은 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의 절제력에 그녀는 경외심마저 느꼈다. 그럴수록 그녀는 아담을 꾀는 이브가 되고 싶은 은밀한 충동에 시달렸다. 서로에 대한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 때는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그러나 맞잡은 손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무 십자가가 그들을 내려다봤다. 은정은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과 이브가 느낀 건 부끄러움보단 수치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결 서약 후에 은정은 내내 불편했다. 그녀의 내면 어딘가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듯했다. 뱀의 꾐에 넘어가도록 그녀의 운명이 설계된 것 같을 때면 어쩌지 못할 무력감에 좌절하곤 했다. 그게 그녀의 원죄인 것 같아서……

2012년 민중문학상 신인상 당선

2025-2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장편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 출간

앤솔러지 『밤의 소네트』에 「셰어」 참여​ 

 

ssaki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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