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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마리오네트

소설 단편

유희란 2021-07-22

ISBN 979-11-920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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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천 개의 마리오네트]를 펼치고는 당신의 이야기냐고 누군가 묻습니다. 나는 또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런 걸 묻는 건 실례입니다, 라고. 다만 내 이야기라고 할 수 없고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미처 알지 못하는 감정은 글로 쓸 수 없으니까요.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마리오네트는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누군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 모두 맡은 역할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어떤 일을 저지르고 난 후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일을 시작하는 명분을 주는 듯도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가려면 방법이 없습니다. 누가 맡겼는지, 왜 무슨 이유로 각자에게 나름의 역할을 주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소설 [천 개의 마리오네트]는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서른 살의 나이 차이에도 인연이 닿고 불륜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실수나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이에게는 유년시절에 겪은 상실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지 않으려 애써도 갈 수밖에 없는 길. 등장인물들은 모두 만들어진 각본대로 누군가 조정하는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입니다.

작년 어느 날, 나는 데님 재킷을 그는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동네 노는 오빠라고 소개한 그가 자신에게는 두카티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애인이 있다고 말하며 내게 소개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나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전면의 헤드라이트 유닛을 보면 알게 될 거라고 하면서 동네 노는 오빠가 편의점 창밖을 가리켰다. 나는 일하는 시간이라 나갈 수 없다고 대꾸하고는 그가 내민 초코바의 바코드를 찍었다. 전에는 말발굽 배기음이 들리는 할리 데이비슨이었다고 하면서 최적화된 코너링과 제동 성능은 꽤 괜찮았는데 차체를 제어하는 기능이 정교할 만치 뛰어나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다음 손님이 내려놓은 네 개 만원에 행사하는 녹차 아이스바의 바코드를 찍는 중이었다. 지금 애인은 편안한 풋 포지션과 잡기 편안한 수동 손잡이 그리고 낮은 시트가 맘에 든다는 말도 했다.

동네 오빠는 좌우로 고개를 꺾어 목을 푸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 후로 고개가 꺾일 때마다 흔들리는 머릿결을 보았고 관절 어느 부위에선가 나는 불량스러운 소리도 듣게 되었다. 나를 기다릴 때, 시간이 더디 갈 때, 때로는 나와 헤어져 돌아설 때였다. 언젠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찾아와서는 할아버지가 노력을 많이 해서 아버지는 재벌 아들이 되었지만, 자신은 양아치 아들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사람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사용하려는 사람이 양아치가 아니고 뭐겠냐며 내게 물었는데 나는 수족이라는 단어에 고래가 헤엄치는 수족관을 떠올렸고 그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오빠의 허리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면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행복에 취해 흥청망청 사치하듯 소리를 지르게 된다고 말하던 그처럼 나도 사치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질러도 되지? 맘대로 소리 질러도 되는 거지?

2013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4 대산창작기금 선정
2021 소설집 『사진을 남기는 사람』 출간

 

yhr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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