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케냐, 문 닫을 시간

선택안함

김은옥 2022-12-30

ISBN 979-11-92211-54-1(05810)

  • 리뷰 0
  • 댓글 0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내가 시를 쓰는 시점은 안개로부터이다.
안개는 작은 물방울이 부옇게 떠 있는 현상이며
어떤 모호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고
눈에 어리는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첫 번째의, 작은 물방울이 부옇게 떠 있는 현상이라는
그런 사전적 의미의 안개가 없다면,
둘째 셋째 의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안개는 실제의 눈물로 만든 무엇이 아닐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넘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넘어
안개라는 이름의 질문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모든 물음 뒤에 오며
가장 나중에도 묻는 물음이어야 하리라.
기존에 주어진 질문들을 데리고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물음 자체가 되어 안개를 몸으로 삼고서 가끔 볕 드는 길로도
지워진 길로도 길 없는 길을 갈 것이다.

카페 케냐
검은 대륙의 눈물을 후후 불며 마신다
임팔라도 원숭이도 얼룩말도 코뿔소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창밖으로
흰 광목천에 싸인 관을 가득 싣고 용달차가 지나간다
저승을 납품하러 가나 저 속에는 어느 짐승이 들어가나
창밖은 자카란다* 장미 향이 케냐의 혓바닥처럼 피어오르고

바퀴 구를 때마다 꽃잎들 함께 구르며 깊게 절한다
파르르 떨기도 한다
보랏빛 형광으로 반짝이다
꿈결인 듯 안개 속인 듯 점점 묽어지다 사라지는 길
용달차 푸르스름한 전조등이
꽉 막힌 도로에서 멈칫멈칫 두리번거린다
노잣돈이라도 받으려는 듯

밀림은 어두워가고
멀리서 하이에나 우는 소리 들려온다

2009년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2015년 『시와문화』시詩 신인상

수필집으로 『고도孤島를 살다』

 

indienk@hanmail.net

 

 

꽃밭에서
석류
죽음으로 향하는 말도 있다
안개의 저쪽
얼음 속의 편지
고양이
뿌리를 비추다
먼지는 힘이 세다
빈 젖
케냐, 문 닫을 시간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