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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계단에 앉아

선택안함

박숲 2024-05-05

ISBN 979-11-93452-39-4(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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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 쓸모없는 것들,
너무 익숙하여 볼품없어진 것들을
오래 쓰다듬다 보면 불쑥,
시의 형상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당신도 죽을 거야

약이 병균과 싸우는 동안
봄이 사라졌다

나는 곧 죽을 거야

이 말을 전하고 싶은데

너는 나보다 빨리 사라졌고
더 멀리 떠나 있었다
4월의 꽃가루가 침대 아래서 비명을 질렀다

햇빛요양원 204호에 월급을 털어 넣던 날 나는,
당신의 집이 있는 루르마랭에 갔다

좁고 긴 골목으로 죽은 계절이 뒹굴고
햇빛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잘게 부서졌다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자줏빛 낡은 대문
나는 네 개의 계단을 올라 당신의 문 앞에 섰다

집주인이 된 적막이 강하게 나를 밀어냈다
뒤집힌 물음표처럼 엉덩이를 네 번째 계단에 묻고
나는 볼록렌즈가 되어 당신의 말속에 스민
알제리의 햇빛을 조각조각 모았다

엄마의 방은 알제리의 태양보다 뜨거웠다지

어느 틈엔가,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다는 당신이 나타나 소리쳤다
맞장뜨란 말야!
소스라치게 놀란 내게
잇새에 문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당신은 침묵,
그게 부조리란 말이지!
조롱기 가득한 독소로 내 몸 어딘가를 할퀸 뒤 사라졌다

요양원 204호와 대척점인 당신의 집 루르마랭!

2021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23년 현대경제 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

2023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시 당선

소설집 『굿바이, 라 메탈』

장편소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storyhol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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