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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말을 알아듣던 때가 있었다

에세이 선택안함

이학성 2021-10-14

ISBN 979-11-9201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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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말을 알아듣던 때가 있었다. 그것들을 받아 적느라 종일 탁자에 엎드려 끙끙거려야 했다. 어떻게 저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을까. 왜 저들이 다가와 속삭였던 것일까. 어떤 책무감이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 적게 했는가. 그 시절은 지났어도 이 기록들이 그때를 증언한다. 저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는 날이 또다시 올까. 기대만으로도 여전히 설렌다.

열두 살 소년이었을 때, 헤르만 헤세의 꿈은 구름을 따라 떠도는 나그네가 되는 것. 싯다르타처럼 집을 떠나 고행의 떠돌이가 되는 것. 그래서 그는 구름을 찬양하는 시인이 되기로 했네. 시인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으리라고 동구 밖 너럭바위에 굳은 맹세를 새겼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오랜 방황 끝에 얻게 되는 내면의 자아. 그것을 찾아 나서기로 했네. 그것은 구름 속에도 있고 또는 구름 밖에도 있는 것. 일체의 모순과 대립을 넘어 찬란히 새 생명을 싹 틔우는 것. 망설임 없이 그는 그것을 찾는 일에 평생을 걸었네. 사유의 수레바퀴를 끌며 질척거리는 흙탕길을 가로질렀네. 그렇게 의문의 길을 찾아 떠났던 저 구름의 일생. 한순간도 벗어남이 없었던 그의 올곧은 행로. 마침내 다다른 여행의 끝, 숨을 거두기 직전 그 현자는 마지막 말을 쏟았네. 저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으니, 성장을 멈춰버린 그 삶이 어찌 충만했으며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으랴!

1961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났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마침.
19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여우를 살리기 위해』 『고요를 잃을 수 없어』 『늙은 낙타의 일과』 외.

 

befree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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