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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 요정

소설 단편

이상운 2021-12-06

ISBN 979-11-9201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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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8일 새벽,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향년 56세로 유명을 달리한 이상운 작가의 소중한 작품들을 스토리코스모스에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게재를 허락해 주신 유가족과 하늘연못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독서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보니 쌀벌레 애벌레 한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가고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좌표를 알고 있을까. 멍청한 놈, 하며 한참 그 놈의 행보를 눈으로 쫓고 있으려니, 광막한 광야를 서성이고 있는 내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봄이 되었을 때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다. 명훈이네는 포근한 산들바람이 불던 어느 날, 마을을 떠났다. 신나게 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마주친 절벽을 앞에 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런 감정을 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 어머니와 명훈이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명훈이네는 트럭을 이용했기 때문에 나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갈 수도 없었다.

명훈이는 식구들과 함께 짐 위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손을 흔들었다. 명훈네 식구들 모두가 손을 흔들었고, 배웅하려고 모여 있던 사람들도 모두 손을 흔들었다. 트럭은 감정을 다독일 시간도 주지 않고 이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속도를 내어 달리더니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버렸다. 나는 명훈이네가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자주 명훈이를 생각했다. 존재의 의문에 사로잡혀 밤마다 별을 보며 우주의 끝에 대해 고민하던 사춘기 시절에도, 실존적으로 처세적으로도 지리멸렬했던 청년 시절에도, 사람이 많거나 사람이 없는 여로에서 대체로 외롭고 쓸쓸하고 어딘가 내가 떠나왔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늘 그를 생각했다.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늘어놓을 때도 나는 그를 떠올리며 그가 내 곁에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 먹은 명훈이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잠들어 있을 때도 웃고 있는 듯 보였던 그 맑은 어린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어른이 된 그가 요정처럼 짠,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광경을 장난스레 몽상할 때도 있었지만, 내 마음에 살아 있는 어린 그의 영상만으로도 그는 내게 이미 요정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가 정말 내 앞에 나타났다.

195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장편소설 『픽션 클럽』으로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하고, 2006년 장편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로 제1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고, 2015년 다큐 에세이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로 제5회 전숙희 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소설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장편소설 『픽션클럽』 『그 기러기의 경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탱고』 『내 머릿속의 개들』 『신촌의 개들』, 청소년소설 『내 마음의 태풍』 『중학생 여러분』 『바람이 불어, 내가 원치 않아도』 『소방관의 아들』, 미니픽션 『책도둑』, 『달마의 앞치마』 『제발 좀 조용히 해줘』 등을 출간했다.

2015년 11월 8일 새벽,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향년 56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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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정은 어떻게 생겼나요 유니 20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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