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여러 정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하나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지 않고 여러 목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이동했다’라는 표현입니다.
전 이 문장을 ‘글을 정의로 구속하지 말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습작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소재와 배경 테두리에 얽매였습니다.
이 울타리는 누가 쳐 놓은 게 아니라 제가 세운 거였습니다.
그나마 울타리인 게 다행이었습니다.
벽이었으면 지금도 삽으로 땅을 힘차게 파고 있었을 겁니다.
울타리를 내리눌러 밟는 과정의 저를 글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제게 기회를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계단형 강의실은 건물의 반지하에 있었다. 창이 없어서 불이 꺼지면 암흑 그 자체인 강의실이었다. 답답했지만 자연대 본관에 이보다 큰 강의실은 없어서 전공 필수 과목은 여기서 강의했다. 나중에 신관이 완공되고 나서는 햇빛이 뒤쪽에서 잔잔히 들어오는 계단형 강의실에서 수업했으나 이건 이 장면 발생 시점에서 봤을 땐 미래의 일이었다.
난 여느 때처럼 계단형 강의실의 가장 뒤쪽에 앉았다. 늘 뒤쪽에 모여 앉는 이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대개 학업에 큰 관심이 없고 학점은 높지 않은 무리였다. 이 무리 속에 있으면 아늑했기에 졸업은 쉽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날 역시 다른 날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수업 시작 전이었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한 난 뒷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엉덩이는 등받이에서 떨어트리고 고개는 뒤로 젖혔다.
교실 앞문으로 학생들이 들어왔다. 이들 대부분은 앞에서부터 자리를 채웠다. 화이트보드는 깨끗이 닦여 있었고 내 교재도 하얬다.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내 교재와 달리 낡은 책상은 흠집이 적지 않게 나 있었다. 강의실 위치가 반지하인 터라 눅눅한 냄새도 났다. 손으로 코를 훔쳤다. 그러면서 내 주변에 변하고 있는 건 뭔지 골똘히 생각했다.
교수님이 들어오고 이제 막 강의가 시작되려던 때였다. 닫힌 앞문이 다시 열리더니 학생 몇 명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이들은 서둘러 비어 있는 앞자리에 앉았다. 그중 제일 앞줄 가운데쯤에 앉은 학생에게서 뭔가 어른거렸다.
젖힌 고개를 바로 세웠다. 엉덩이를 등받이에 가져다 댔다. 눈가에 힘을 줬다.
저 학생에게서 어른거리는 건 분명 빛이었다. 앞서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강의실은 반지하에 있고 창은 없었다. 빛이 벽을 뚫을 수는 없다. 근데 이 학생의 머리 뒤에서는 정말 광채가 동그란 띠를 이루고 있었다. 너무 뻔한 설정을 끌어다 쓰는 거짓말 같아 보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당시 내 눈에 이 학생은 자체 발광했다.
옆자리에 앉은 학우를 팔꿈치로 쳤다. 학우는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또 한 번 팔꿈치로 이 학우의 팔을 치며 앞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학우는 이번에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심심하면 너나 나가서 놀아라. 나는 이 수업 더 빠지면 안 된다.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눈으로 말했다.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려 방금 들어온 학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굵은 웨이브가 나 있는 갈색 머릿결 주변 빛의 띠는 방금보다 조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빛났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저분이야……’
고개를 휙휙 돌렸다. 내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저……분……이……야.’
이번에는 학우가 내 어깨를 쳤다.
“야, 정신 안 차려?”
학우는 필기가 전혀 없는 내 노트와 교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수업은 다시 들어도 성적이 잘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학우는 강조했지만, 당시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만들어 낸 것 같은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인간에게서 빛이 나는 설정 역시 우리에겐 익숙하다. 그렇다면 영상 콘텐츠를 통해 이뤄진 반복 학습이 도파민 과다 분비와 겹쳐 내 시야에 착시를 일으킨 것이라는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과학적 관점으로는 그 학생이 내뿜는 광자가 급격히 증가했을 수 있다.
사람의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생성할 때 가시광선을 발생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가시광선은 사람의 눈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서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 때문에 사람의 눈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빛을 발산했을 수 있다.
사람이 성자에게서 봤다는 후광 현상은 이 둘을 조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자의 박애가 충만할 때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쓰는 에너지를 크게 늘린다. 성자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차오른 이는 도파민을 마구 생산한다. 이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 평소에는 보지 못할 빛을 감지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자연적 현상의 일부라고 해석해야 한다.
인간에게서 빛을 본 일은 그 이후로는 없었다. 그때 경험한 그 영험한 빛은 자연 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재차 경험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 비현실적 장면으로 꼽았다. 난 여전히 그 학생이 내게 빛을 보여준 이유를 찾고 있다.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에서 「제니의 역」으로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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