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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에세이 선택안함

이시경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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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내 소설이 어떤 의식적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에 관한 언급을 한다는 것 자체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이미지가 내 의식의 중심에 형상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그것이 ‘활자카메라’ 같은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다. 신기하지만 그와 같은 의식과 무의식, 구상과 비구상 사이의 어느 지점에선가 나의 소설은 잉태되고 생장하고 이윽고 분만된다. 그 경로가 나에게는 일종의 오컬트이지만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경향도 나에게는 있는 것 같다. 이유가 어떠하든, 창작이 고통스런 작업이 아니고 즐거운 작업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찰나의 순간, 나는 깊은 심연에 빠져든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훅하고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비몽사몽 와중에 내 다리를 타고 무언가 꼬물꼬물 기어올랐다.

잠결에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를 손으로 탁, 소리나게 쳤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꼬물거리며 내 종아리를 절벽처럼 타고 기어올랐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손을 그 부위로 가져갔다. 그리곤 내 종아리에 붙은 벌레 가까이로 손바닥을 가져갔다. 다음 순간 다시 한번 탁, 소리나게 내리쳤다.

동시에 나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탠드 불을 켰다. 그러자 작고 검은 벌레 같은 게 하얀 침대보 위에 떨어진 게 보였다. 그것은 죽지도 않은 채 작고 기다란 막대처럼 생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꿈틀거렸다.

나는 양미간을 모은 채 유심히 그것을 관찰했다. 그것은 기다란 막대 세 개와 짧은 막대 하나가 겹친 모양의 벌레처럼 처음 보는 종류였다. 개미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개미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생김새에 소름이 돋아 나는 멀뚱멀뚱 두 눈만 끔벅거렸다.

그때였다.

-뭘 그렇게 쳐다봐?

-어라?

가느다란 소리로 그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벌레가 말을 하네?

화들짝 놀란 내가 혼잣말하자, 그것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벌레라니? 난 벌레가 아니야.

-벌레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꿈을 꾸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나는 엄지와 검지를 집게처럼 맞잡아 그걸 집어 들었다.

-난, 나야. 별명은 활자개미.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웹북 『데스밸리 판타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푸에고 로사』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데니의 얼음동굴』 『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출간​ 

 

sky_i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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