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내 소설이 어떤 의식적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에 관한 언급을 한다는 것 자체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이미지가 내 의식의 중심에 형상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그것이 ‘활자카메라’ 같은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다. 신기하지만 그와 같은 의식과 무의식, 구상과 비구상 사이의 어느 지점에선가 나의 소설은 잉태되고 생장하고 이윽고 분만된다. 그 경로가 나에게는 일종의 오컬트이지만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경향도 나에게는 있는 것 같다. 이유가 어떠하든, 창작이 고통스런 작업이 아니고 즐거운 작업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찰나의 순간, 나는 깊은 심연에 빠져든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훅하고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비몽사몽 와중에 내 다리를 타고 무언가 꼬물꼬물 기어올랐다.
잠결에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를 손으로 탁, 소리나게 쳤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꼬물거리며 내 종아리를 절벽처럼 타고 기어올랐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손을 그 부위로 가져갔다. 그리곤 내 종아리에 붙은 벌레 가까이로 손바닥을 가져갔다. 다음 순간 다시 한번 탁, 소리나게 내리쳤다.
동시에 나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탠드 불을 켰다. 그러자 작고 검은 벌레 같은 게 하얀 침대보 위에 떨어진 게 보였다. 그것은 죽지도 않은 채 작고 기다란 막대처럼 생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꿈틀거렸다.
나는 양미간을 모은 채 유심히 그것을 관찰했다. 그것은 기다란 막대 세 개와 짧은 막대 하나가 겹친 모양의 벌레처럼 처음 보는 종류였다. 개미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개미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생김새에 소름이 돋아 나는 멀뚱멀뚱 두 눈만 끔벅거렸다.
그때였다.
-뭘 그렇게 쳐다봐?
-어라?
가느다란 소리로 그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벌레가 말을 하네?
화들짝 놀란 내가 혼잣말하자, 그것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벌레라니? 난 벌레가 아니야.
-벌레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꿈을 꾸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나는 엄지와 검지를 집게처럼 맞잡아 그걸 집어 들었다.
-난, 나야. 별명은 활자개미.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2024 종이책『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2』(공저) 출간
웹북 『데스밸리 판타지』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푸에고 로사』 『색채 그루밍의 세뇌 효과에 대하여』 『데니의 얼음동굴』 『나는 이것을 색(色)이라 부를 수 없다』『사평(沙平)』『내 소설의 비밀병기: 활자카메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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