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선 육지와 섬 사이 강처럼 긴 바다가 보이고 그 사이를 연결한 다리가 보인다. 창문을 연다. 트럭과 모터사이클이 다리를 건너온다. 동시에 온갖 소음이 쏟아져 들어온다. 트럭과 모터사이클이 다시 섬을 빠져 나갈 때까지 저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창문을 닫는다. 저 세계와 이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된다. 모니터의 활자들이 다시 긴장한다.
다리 건너편 마을에서 하루에 두 번 새들이 날아왔다. 앞마당의 블루베리는 보랏빛을 지워가며 새들에게 온전히 바쳐지고 있다. 블루베리가 없었을 때 저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블루베리 화분을 마당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문장 하나가 완성된 걸까. 몇 개의 식물을 더 가져다 놓는다. 장미와 범부채와 수국, 샤스타데이지 등을 가져다 놓는다. 짧은 시가 산문이 되어가듯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백악기의 어느 날 지구 한 귀퉁이에서 목련을 닮은 커다란 꽃이 출현했고 그 꽃으로 인해 매개자인 곤충이 생겨나고 곤충의 상위그룹이 탄생하며 최상의 그룹인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이 신비스런 우연을 인류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것은 과학의 영역인가 신의 영역인가.
한때 꽃과 나무의 기기묘묘한 메커니즘에 빠져 전국의 수목원과 산을 찾아다녔다. 호랑나비는 산초나무에 알을 낳고 네발나비는 환삼덩굴에 알을 낳아 제 새끼를 기르며 곤충들도 좋아하는 먹거리가 제각각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꽃과 나무의 영역은 인문학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탐구 영역은 언제 끝날지 나도 모른다. 아무리 깊은 숲에 들어간다 한들 결국은 시인으로 돌아오겠지만,
인간에게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처럼 지구상의 다른 생물도 성을 가지고 있다. 꽃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어 반드시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묻어야만 열매가 맺히고 씨가 생긴다. 이때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옮겨주는 역할을 곤충이 함으로써 식물은 좀 더 확실하게 자손번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곤충이 모든 생물의 밥이며 집인 숲을 푸르고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꽃은 말하자면 식물의 성기이다. 식물을 성의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꽃의 향기를 즐기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식물의 성기에서 나는 냄새를 즐기는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꽃잎 한 장 한 장은 사람의 치부를 가리는 팬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남 강경 출생
수도여자사범대학 졸업
1997년 『현대시학』등단. 『배롱나무 사원』 『심장을 가졌다』 외 3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kimj2850@hanmail.net
겨울 숲에서 책을 읽다 저 만화방창을 어이하랴 또 하나의 숲 - 곤충 : 苦ㆍ集 ㆍ滅 ㆍ道 의 삶 매화를 기다리며 : 금둔사의 납월매 그리움의 거리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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