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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냉혹함에 거는 시비

ams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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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꼭 헤어지자고 말할 거야.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마다 친구는 말했다.

친구는 지금 그 남자와 아이 둘 낳고 그냥저냥 살아간다.

 

현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소설의 고현 씨처럼 친구도 차라리 그 남자가 죽기를 바라면서 만났을까.

이은경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순간순간 자꾸자꾸 움직이지 않아서 현재의 상황이 된 걸까.

 

소설의 화자 는 대학 캠퍼스, 고궁, 공원 등을 다니며

연인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을 소재로 글을 쓸 계획이다.

그렇게 고현 씨를 만났다.

그는 이은경이라는 여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은경은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된 것도,

사람들이 그걸 원해서고.

작은 물장구가 까마득한 호수 저편 언덕에 구멍을 뚫는 것도,

그래서 근처 마을이 물바다가 되는 것도,

사람들이 원하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말한다.

 

언뜻, 현재를 열심히 나아가면 뭐든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소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읽는 내내 뭔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읽고 난 뒤에 오히려 정반대의 허무를 느낀다.

 

어쩌면 고현 씨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은경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

결국 이은경의 존재는 고현 씨가 그걸 원했기 때문일지도.

 

그렇다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이 그걸 원해서인가.

그럼 나는 진정 존재하는 것인가.

백 년, 이백 년 뒤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9만 년 뒤에 우리 은하계 끝에 도달하게 될 보이저호를

누가 기억하겠느냐고 말하면서 고현 씨는

이는 속된 허무감이 아니라

시간의 냉혹함에 시비를 거는 것이라 했다.

이 부분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이상운 작가의 작품을 추천해주신

스코 독서카페 뜨물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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