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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SF 소설

솔트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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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SF소설을 읽는가?

이 최초의 질문은 이상욱 작가의 <스탠다드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SF소설은 다 똑같은 공상 과학 소설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소 과학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전문적인 과학지식으로 무장된 SF소설을 대할 때면, 간혹 높은 진입장벽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말고 네이버를 검색할 때도 있다. 이 소설 또한 첫 느낌은 그랬다. 글의 초반에 과학적 지식에 대한 배경이 나온다. 그리 난해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전체를 그러한 텐션을 갖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지울 수 없었다. 자연스레 뒷걸음질치게 되는 것이다.

대개는 그렇지 않겠지만 한편으론 나 같은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장벽을 감내하면서까지 왜 SF소설을 읽는 걸까. 사실 공상과학 이야기는 웹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처럼 시각적인 방식이 더 이해가 쉽고 재밌다. 굳이 가뜩이나 어려운 과학적 지식을 소설이라는 한정된 지면의 영역 속에, 그것도 평면적인 활자에 구겨넣는 방식은 다소 원시적이고 자학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들어, 4차산업혁명이니, 문이과통합이니, 별별 신조어들에 등떠밀리듯. 그럼 나도 SF소설에 관심 한번 가져볼까? 라는 마음이 컸다는 고백을 한다. SF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과학적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된 가상현실과 가공할만한 상상력은 가히 놀랄만하다. 나름 재미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접근불가한 상상력에 대한 동경을 제외한다면.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해줄 소설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 하다. 그러다 <스탠다드맨>을 읽게 되었다. 과학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미루고 미루다 읽은 것이다. 첫 장부터, 과학적 지식의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심 선입견에 시달렸다. 그러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SF를 읽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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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드맨은 누구?

"우리 세대의 가치는 어디서 기원하는가.

아버지 세대의 가치는 어디서 기원하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기를 바랐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 중)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미래의 어느 시점.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최정점에 달한다. '의식'으로 불리던 추상적인 뇌의 영역이 뇌과학에 의해 구체적인 데이터값을 지니게 된다. 우수한 뇌 형질만을 조합해서 표준화된 값을 도출한다. 그것을 이 소설에서는 '집합적 기억의 표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스탠다드맨은 인간의식의 표준화된 데이터값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표준화된 데이터값이 '의식'으로 이식된 최초의 인류가 탄생한 셈이다. 이후, 모든 인류는 스탠다드맨의 후손으로 표준화된 '의식'의 데이터값을 지닌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탠다드맨이 죽는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의사로서 그를 만나러 간다. 가는 길에서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에는 스탠다드맨이 사랑했던 미란도 있으며, 내가 사랑했던 아들도 있다. 그들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또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스탠다드맨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과연 표준화된 의식이 맞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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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드맨에게 '사랑'이란?

"저에겐 공백이 있습니다. 처음 그 공백과 마주한 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 막연한 어떤 것에 불과했지요. 그 공백은 노력으로 메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노력으로 메울 수 있는 걸 우리는 공백으로 부르지 않으니까요. 그 공백은 절 남자들에게 집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핍? 혹은 보상심리? 정확히 설명할 말을 찾기 어렵군요. 남자들은 제 집착에 질려 떠나갔고, 이야기 끝에는 언제나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탠다드맨 중에서 발췌)

스탠다드맨은 의식을 완벽한 데이터로 구축했다. 그것에는 사랑에 관한 의식도 내포되어 있다. 아마 스탠다드맨이 설계한 표준화된 사랑이란 완벽할 것 같다. 하지만, 표준화된 의식에서조차 사랑은 공백으로 남는 걸까?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관계성에 있다. 스탠다드맨과 미란의 관계, 그리고 나와 아들의 관계. 죽는 순간까지도, 완벽한 사랑을 꿈꾸지만, 관계의 결말은 늘 공허하다.

사랑이라는 기억에 대한 집합적 표상. 그것은 완벽한 대상, 완벽한 관계, 완벽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미란의 말에 의하자면, 그 첫 기억은 '공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공백에는 노력조차 통하지 않는, 집착, 결핍, 보상심리, 왜곡된 성의식, 버림받음, 슬픈 결말이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공백의 좌표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의 대상은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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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드맨이 죽었다.

스탠다드 맨이 죽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집합적 기억의 표상'으로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한편, 그의 죽음을 파헤치고 목격하게 된 나로서는 그의 죽음의 의미가 단순히 표준화된 의식의 박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탠다드맨과 미란의 사랑, 나와 아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묘한 접점을 이루면서, 스탠다드맨의 죽음 앞에서 나는 이렇게 절규한다.

저는 도대체 뭡니까? 저는 도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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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과 경계없는 발상

상상력이 기발하고 발상이 경계없다.

무엇보다 인간의 뇌에 관련된 과학적인 상상력이 독특하다. 의식, 무의식, 기억, 사고, 감정 등. 이런 요소들은 대개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소설에서는 그러한 의식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환원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한술 더 떠서, '집합적 기억으로서의 표상'으로 인간의 의식에 대한 표준화를 꾀한다. 발상 자체가 기발하다. 또 재미있었던 내용은 의료용 나노벅스인 A, B, C.. 타입의 벌레에 관한 것이었다. 의료, 신경학, 로봇공학... 심지어 철학까지 경계없이 아우른다. 도대체 이 작가의 정체는 뭘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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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대체 뭡니까?

이 소설은 단순 재미를 전달하기 위한 공상과학 이야기는 아니다. 미란이 정신병동에서 읽었던 <인간실격>이라는 책이 괜한 제목이 아닌 것이다. 의식을 하건 못하건 우리의 의식은 이미 표준화된 집단 의식에 의해, 또한 세대간에 의해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고, 또 길들여간다. 그렇다면, 나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소설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인간 실존의 문제에 접근한다.

작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삶의 어떤 가능성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과 개별 무의식, 집단 의식과 개별 의식에 대한 사유에 관한 것이다. 작가가 던진 한 질문, "저는 도대체 뭡니까?"라는 메세지가 내 삶에도 연동되어졌다.

나는 도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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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탠다드맨>을 기대하며

언젠가 극장에서 영화 <스탠다드맨>을 볼 수 있기를......

몸 속을 기어다니는 오글거리는 의료용 나노로봇 장면, 정신병동에서 미친년 취급을 받으며 '인간실격'을 숨어서 읽는 미란, 박지우(스탠다드맨)과 미란의 러브스토리, 나의 사랑하는 아들, 스탠다드맨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 등등. 한 편의 소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살아 꿈틀거리는 듯, 언젠가 <스탠다드맨>을 영화로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 왠만한 영화 한편 보다 훨씬 감동적인 헐리우드급 SF휴머니즘 소설~!! 만일, <스탠다드맨> 개봉 소식이 들리면, 그 날 바로 극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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