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과 사탄의 마을을 거쳐, 모든 작가들이 섰던 자리인 사람의 마을에 당도했다." (- 박상우 소설가)
소설은 왜 읽는 것일까. 저마다의 이유는 제각각 다 다를 것이다. 물론 소설을 대하는 태도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 경우엔, 주로 소설이라는 것이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도 유사하게,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접근하기 위한 어떤 경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박상우 작가의 소설 작품들을 이어서 읽다보면 꽤 흥미로운 경로를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별다른 의도없이 읽게 되었던 박상우의 전작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사탄의 마을>. 이 두 작품이 예상치도 못하게 <사랑보다 낯선>과의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 <사랑보다 낯선>은 세계와 인간을 '기록'의 대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의 인간이 자신의 존재적 입지와 벌이는 힘겹지만 인간적인 분투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인간은 모더니티의 광기에 대상화된 존재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에 굴복하고 좌초되면서도 힘겹게 자신의 삶과 운명의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박상우 소설이 종말적 세계에 대한 대결이나 단절 의식보다는 그 속에 놓인 인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이해를 소설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보다 낯선>에는 삶의 풍경을 천천히, 그러나 깊이 응시하는 만보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공명이 깃들어 있다. - 김민수(문학 평론가)
<사랑보다 낯선> 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가짜 미이라를 소재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한 여자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다소 단순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오히려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 안에서 펼쳐지는 주인공과 여자와의 낯선 만남의 경로가 서사의 볼륨을 깊이있게 생성시키는 듯 했다. 가짜 미이라가 판치는 혼미한 세상, 그러한 현실 속에서 보조개나 꼬집히는 식물화된 대상 같은 주인공 캐릭터, 예상치 못한 접근 방식으로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삶에 무기력한 여자 캐릭터.
최종 목적지를 알 수 없고,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방탈출 까페 같은 갇힌 현실에 던져진 듯한, 두 남녀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사뭇 낯설게 다가온다.
- 나는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 인간적인 상태가 아니라 물질적인 상태, 혹은 에너지와 같은 상태로 그녀와 나는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본문 발췌)
이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이러한 질문이 내게 집요하게 따라다녔는데 여전히 그에 대한 대답은 미지수다. 다만,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매우 신박한 소재가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배추밭이며 그 곳에서 산출된 김치라는 소재이다. 그로 인해 나를 따라다니던 질문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왠지 '사랑보다 낯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퀘스트를 찾아가는 과정 같았다. 사랑이란 고정관념에 관하여, 사랑이란 믿음에 관하여, 사랑이란 약속에 관하여 등등.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견인하는 것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더불어 세계성과 인간성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사탄의 마을> 이라는 두 작품과의 연결성 속에서, <사랑보다 낯선>이란 작품을 들여다보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 둘이 무슨 관계인지...아리쏭하다. 이럴 땐 매운 김치 한 조각이면 정신이 번쩍 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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