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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열혈 남아, 이재명 열사를 만나다

초록달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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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2월 15일 밤,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장소는 청계천 수표교 근처의 한 대장간이었다.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사람의 굳은살 박인 손에 잡혀 수도 없이 다듬이질을 당하고 연마석에 갈리고 물과 불 사이에서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 나의 온 몸에서는 서서히 생명의 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소설 <칼>의 일부 발췌)

 

소설 <칼>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소설은 스물둘에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작가의 말에서 발췌) 이재명 열사에 관한 내용이다. 특이하게 ‘칼’이 화자가 되어 거사를 전후하여 이재명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열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설령 아무리 역사적으로 입지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내 삶에 긴밀히 접속되는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칼>을 읽고 나서 이재명 열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생생하게 만난 것 같았다. 리뷰를 쓴다는 것조차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소설 앞에서, 왠지 나 또한 아름다운 열혈남아 이재명의 팬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에, 부족하나마 몇 글자 끄적여 본다. 

 

소설 <칼>은 박상우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아름다운 열혈남아를 위하여’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역사 속에 파묻혀 있던 한 인물을 재조명하기 위한 목적의식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묻혀 있던 사료를 찾아다니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소설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소설에 첨부된 자료만 해도 입이 턱 벌어질 정도이다. 비록 작가는 온전한 사료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 소설이 나에게 준 의미는 그보다 훨씬 이상이었다. 

 

그것은 온전한 시대정신의 복원이었다. 

 

무엇보다 칼이 화자가 되어 서술한 점은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시작은 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칼의 시점에서 갈등과 사건과 소멸의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 지점이 이재명 열사의 뜻과 정신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데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보다 상상력이 자극될 수 있었다. 이재명 열사의 정신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정신으로 현재에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듯 했다. 

 

소설은 이재명 열사가 칼을 손에 넣은 시점부터 거사일까지, 그리고 이후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기까지를 그린다. 칼의 관찰자 시점에서, 이재명 열사의 굳건한 신념과 결의, 아내와의 사랑, 탄식과 고뇌 등을 엿볼 수 있다. 왜 작가가 ‘아름다운 열혈남아’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총도 아닌, 칼 한자루만 손에 쥔 채로 민족반역자를 처단 하리라는 굳은 결의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작가는 그 정신의 근간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삶에 반추해 보며, 다소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온전하게 복원된 이재명 열사의 정신은 보편적 사랑의 가치가 되어 현재 내게 많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설령 민족 정신이라는 말까지는 아닐지라도, 현재 내 손에 쥐어진 칼 한자루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게 되었다. 

 

혹 목적을 잃어버린 칼은 아닌지, 혹 목적은 있으나 용도를 잃어버린 칼은 아닌지, 혹 목적과 용도는 있으나 날이 무뎌져 버린 칼은 아닌지, 혹 아예 칼조차 없는 건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끝맺으며, 아름다운 열혈남아 이재명 열사를 알게 되어 진심 기쁘다. <칼>을 쓴 박상우 작가에게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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