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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차기'의 미학

ams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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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가 무수한 작가들이 물고 빨고 짓씹다 버린 찌꺼기라면

찌꺼기의 왕중왕은 단연코 가족사일 것이다

그래서 맨날 깨진다. 가족 이야기 하지 마세요.

깨지면서 중얼거린다. 가족 이야기를 안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절망스럽다.

 

소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는 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풀어내면 된다고. 풀어내는 방식을 연구하라고.

 

소설은 도입부부터 뭔가 독특한 표현 방식을 취한다

한 눈에 혹하는 되바라지고 톡톡 튀는 문체가 아닌데 

젊고 신선하고, 동시에 클래식하고 우아하다.

 

작가는 의 삶을 기후에 비유하며 안젤라와의 관계성을 기상학적 언어로 묘사한다

이것은 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데 기여한다.

마치 일기예보처럼, 안젤라에 대한 의 마음이 덤덤하고 객관적으로 서술된다.

하지만 그 일곱 줄의 문장에서 독자는 의 비루한 삶과 지겨운 가족사와

안젤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알아차린다. 구구절절 토해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쌍한 미혼모 안젤라는 불쌍한 사람을 만나서 정말로 좋다에게 말한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안젤라가 귀엽다.’는 나.

하지만 안젤라는 의 장애인 동생 병우와 무언가를 비밀스레 도모한다.

언뜻 통속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방식으로 통속을 거부하고 낯설어진다.

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독자에 아랑곳없이 시종일관

얄밉게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두기를 한다.

병우가 멀쩡하게 일어서 하늘을 향한자신의 거시기를 보고

통쾌해하며 '미친 듯이 웃는' 장면은

독자의 예상을 통쾌하게 비웃으며 소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은 삶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면서 삶의 무게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조금은 감상에 젖게 된다.

 

병우의 바람대로 다음 생에는 그가 다르게 살기를.

안젤라가 이제는 진정 가볍게 살기를.

카페 함부르크로 다가오는 의 아침이 매일매일 따스하기를.

 

한 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모두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

한 해의 끝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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