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솔 작가의 소설적 세계관을 좋아하는 독자이다.
스코에 올라온 <말하지 않는 책>이 언어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사랑에 관한 낯선 세계관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경로를 거치며,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흔히 사랑은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또한 사랑의 호르몬으로 기인한 것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최근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고 한다. 30년 넘게 유지해 온 과학계의 정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영원히 이해될 수 없는, 영원한 미제로 남을 것인가.
김솔 작가의 <걷는 여자, 걷는 남자>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해석한다.
그것은 주류를 이루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존재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단어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걷다'일 것이다.
걸었다, 걷는다, 걸을 것이다가 아닌,
'걷다'!
이 소설이 보다 재미있었던 까닭은, '걷다'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까운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에 대해 보여주는데,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또한, 작품을 통해 인류 보편적으로 내재된 선험적인 경험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랑을 '걷다'로 접근하다니!
김솔 작가의 작품은 작가 고유의 언어를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세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작가가 어떻게 언어를 다루느냐에 따라 한 단어로 하나의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김솔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에 급속도로 빠져들어 새로운 세상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걷다!
너무 앞서지도, 그렇다고 너무 뒤쳐지지도 않는, 동일한 보폭으로 걷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연인 걸까.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