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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사이보그는 무엇이 다른가?

블랙아웃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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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단편을 오랜만에 읽었다. 아니 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온갖 자극적인 영상들에 시선을 빼앗겨 글을 접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 헌 책방에서 구한 SF 단편선에서 보았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태양을 삼키는 불가사리, 자신이 로봇임을 깨닫는 순간 폭발해버리는 사기꾼 로봇... 생각의 관성을 벗어나는 전개에 얼마나 빠져들었던지...

 

  <테이블>을 읽으며 내 생각의 틀이 견고함을 다시 깨닫는다. 커플은 남자와 여자일 거라 짐작하고, 이름으로 성별을 추측하고.... 색안경 같은 이 생각의 틀에 묶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지만 소용없다. 이를 깨닫게 해주는 이 글이 참 좋다.

 

  완벽한 의체가 가능한 미래에도 차별과 폭력은 여전할까? 트라우마로 인한 공황은 의체화된 사람에게도 여전할까? 유연은 사이보그 수술 후에도 공황을 겪었으나 점점 회복의 길로 나아갔다. 자율 신경을 통제할 수 있는 몸이 도움이 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는 마음의 고통일 터이니. 그러나 혹시 유연은 여전히 트라우마의 시냅스를 저장 장치의 형태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의 회복은 좋은 타이밍에 활동하며 몸을 움직이며 얻은 성취와 희망의 결과물이 아닐까? 수술 없이 회복을 시도할 수는 없던 걸까? 아쉽다.

 

  정미의 섬세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도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감각, 감정, 충동, 판단, 기억. 사람의 정신 활동이라는 것도 두뇌에서 일어나는 뉴런과 시냅스의 신호 주고받기라면, 이를 코드화할 수 있는 시절이 온다면 그 본질을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양자의 단위로 넘어가면 사람이나 사이보그나 구성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닌가... 정미가 느끼는 상실과 그리움은 부드러운 몸인가? 사이보그의 몸이 사람의 피부만큼 비슷해지면 그 상실감이 채워지는 건가?

 

  작가가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궁금하다. 듀나처럼 한 우물을 팔 것인가? 그러기엔 너무 젊은 나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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