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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시공간 속으로, ft. 귀신(오니)

솔트 202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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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기억을 통해 산 자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게 바로 전통이라는 겁니다. 내 안에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조상이 함께 있는 걸 깨닫는 거라고요. 당신이 이걸 압니까?" (-최이아 '당신도 조심하시오' 중 발췌)

 

최이아 작가의 '당신도 조심하시오'를 읽었다.

 

이 소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을 배경으로 시체 수의 도난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재도 독특하지만 추리식으로 전개되는 플롯이 상당히 긴장감있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 소설의 주제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가 없다. 아마 작가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꺾기, 찍기, 돌려차기, 엎어치기 등 자신이 가능한 모든 신공을 다 동원한 듯 하다. 그 때문인지 주제가 보다 입체적으로 와 닿았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의 본연을 그대로 투영해주는 듯 했다. 이 지점에서 작가적 치열함이 느껴졌다. 시대를 바라보는 직관과 통찰력이 결단력 있게 와 닿았고, 문학적 보편성을 성취한 듯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찬조 출연도 있다.

 

소설 속에는 아주 특이한 귀신이 출몰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 구현된 귀신의 존재가 너무 생생해 마치 실제처럼 여겨진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 동원된 컨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린, 어쩌면 현실에 잔존할지도 모를 그런 귀신이다. '당신도 조심하시오'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도 그 때문일까. 그만큼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세상의 것인 듯, 아닌 듯, 매우 오묘하다.

 

소설가는 태생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난 걸까.

 

현실에서의 여행이 순차적인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소설에서의 여행은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비틀린 시간과 파편화된 공간이 작가의 언어적 시각에 의해 한정된 지면 위에서 새롭게 짜여진다. 말하자면 작가는 독자를 내면화된 세계로 이끄는 '가이드(안내자)'인 셈이다.

 

최이아 작가의 등단작인 '제니의 역'(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 근미래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스토리코스모스에 올라온 두 번째 작품 '랩에서 생긴 일'은 현재를 다룬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인 '당신도 조심하시오'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미로운 점은, 제니의 역이 SF장르라면, 랩에서 생긴 일은 SF와 판타지가 조합된 장르처럼 여겨지는데, 이번 작품은 어떤 장르인지 한정지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성 하나는 소름돋을 정도로 재미있다. 기존에 존재하던 시공간과 장르에 대한 통념이 일면 허물어진 느낌이랄까.

 

미래를 경유해, 현재를 관통해, 과거를 거슬러, 이후 이 작가에 의해 구축된 '현재성' 속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최이아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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