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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그리고 파멸

뮤에그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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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이동통로는 야생 동물의 찻길사고(로드킬)를 줄이고, 이동을 쉽게하기 위해 생태 통로와 주변 서식지 연결해 만들어진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등장하는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통로가 보이지 않도록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주인공들을 가로막은 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개.

여기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분위기와 상황 설명만으로 긴장감과 몰입도를 최상으로 만들어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불쾌함의 찌꺼기가 남을 수 있는 내용이 숨겨져 있다. 여자의 행동과 내뱉는 단어에서 불편함과 역겨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기괴하고 자극적인 방법을 택해 그의 본성을 죽이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불편하고 치열하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원래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무미건조한 인생을 탓하고 싶어 모든 원인을 ‘남자’에게 돌리는 여자의 어긋난 마음을 보면서 비극이 곧 들이닥치겠구나 예상했다.

 

이렇듯 한 사람과 맺은 악연은 파멸을 불러온다. 과거 나를 구원해 준 구원자였던 ‘여자'가 훗날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소름 끼치는 ‘악녀'가 될 줄 그는 몰랐을 테다.

 

남자는 원치 않은 결과가 선명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단지 여자가 행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남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본인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여자에게서 발버둥 쳐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일 것이다.

 

그럼 그 여자는 마지막이 후련했을까? 오히려 삐뚤어지고 어긋난 자신에 대한 자학적 복수였는지 모를 일이다.

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된다.

 

이 단편 소설을 읽는 내내 단 한 문장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주는 구성의 대단함을 느꼈다. 

또한, 독자를 압도시키는 강렬한 스토리텔링으로 주요 인물의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이야기가 이해되어 소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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