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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말 픽션일까?

요제프k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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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문예지를 읽고 있었는데, SF 비평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SF는 영점세계(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가능세계(작품 내부의 현실)를 확장, 도출해 내는 장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현재의 과학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했을 때, 우리가 확률적으로 만날 수 있는 세계를 논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SF를 다음의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 영점세계에서 가능세계를 도출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는가.

 

 2) 그렇게 도출해 낸 가능세계가 ‘낯설게 하기’를 수행하는가. 

 

 <X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대한 보고서>는 위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SF 소설이다. 먼저, 이 작품에서 제시한 가능세계는 대단히 설득력 있다. 2023년 5월, 미국 FDA는 일론 머스크가 기획한 뉴럴링크 프로젝트의 인간 대상 실험을 승인했다. 현 단계에서는 척수환자, 파킨슨병, 시각장애 등 장애가 있는 미국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향후에는 누구나 뉴럴링크를 사용하는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 뉴럴링크의 보급이 이뤄진다면, 이 소설 속의 가상세계 X는 더 이상 공상의 영역이 아니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가능세계의 모습 속에서 은근슬쩍 현재의 우리 사회를 투영하며 ‘낯설게 하기’를 수행한다. X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를테면 X코인 열풍, 플랫폼의 구독료 인상, 데이터 수집을 위한 강력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비트코인 열풍, 유투브 프리미엄/넷플릭스의 구독료 인상, 각종 디지털 범죄 등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이 소설을 미래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낙관하고 싶지만, 이미 가상 세계 X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사유하는 것은 비단 필립만의 몫이 아니다. 0과 1의 비트를 기반으로 한 가상세계는 차츰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인터넷 뱅킹부터 화상 수업, 로맨스 스캠, 메타버스 회의, 개인 인공지능 비서에 이르기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가상 세계에 일정 부분 의존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필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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