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보고서라서 더 좋았던 소설

TPB 2024-04-21

  • talk
  • blog
  • facebook

내게 이 작품은 소설을 쓸 때 형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SF소설들이 다른 글의 형식을 차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를 통해 낯선 설정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과 잘 붙지 않는 경우 오히려 이 기능이 역으로 작용하거나, 형식만 부각되고 이야기는 가려지기 쉽다. 

 

이 작품이 단편 소설이라는 점 그리고 실존 인물까지 언급하는 근미래 설정인 점을 고려했을 때 보고서 형식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독자에게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단편 분량 안에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은 보고서 형식에 맞춰 서술과 설명으로 사건을 진행하는데, 이때 세계관의 세세한 설정들은 사실의 형태로 사건의 흐름과 평행하게 이야기 안에 들어온다.

 

또한 이 소설은 가상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세계가 위치하는 곳은 현실이다. 실존 인물과 이미 예정된 프로젝트가 언급되며 현재와 시간대를 공유한다. 이 시점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도 양면적인데, 독자가 더 쉽게 배경에 몰입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있다. 작가가 만든 세계와 현실의 간극을 크게 느끼는 독자의 경우, 전형적인 픽션 형식은 소설의 모든 사건이 허구인 것 같은 인상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곳곳에 각주와 인용을 배치하여 이 글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소설 첫 부분에 작성자가 기자라는 것, 이 보고서가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미래적 배경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인간인 주인공 필립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소설에서 형식이 가지는 효과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