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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운이 남는 소설

솔트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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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견디는 자의 시간


한 남자가 있다. 아내가 죽었지만 마냥 슬퍼할 수조차 없다. 아내의 죽음 이후에, 그는 도무지 이성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인식의 난관에 봉착한다. 그것은 마치 현실과 괴리된 무인도에 갇힌 것처럼, 무력한 슬픔의 바다가 되어 그의 삶을 에워싼다.

 

그날 아내는 왜 다른 남자의 차를 탔을까?

그날 아내는 왜 내게 그런 말을 남겼을까?

 

동일한 도로가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도로가 된다는 아내의 말은, 마지막 유언처럼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아내에 대한 이해의 지점을 찾아가던 그는, 우연하게도 한 마리의 박제 거북을 만나게 되는데.....

 

흔히 사랑의 속성이란, 동일한 시공간에 머물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상대가 세상을 떠나면, 그간 공유해 왔던 사랑은 오롯이 남겨진 자의 몫이 된다. 더구나 그와 같은 경우라면, 아내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도 마찬가지로 인간 인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에게 있어서 아내의 죽음이 더 이상 이성으로만 가늠될 수 없듯이, 이것들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마냥 슬픔에 빠져 지낼 수도 없다. 그저 슬픔을 견딜 뿐이다. 이성과 감정의 저울질 가운데, 둘의 균형이 맞춰지는 어느 지점에선가 새로운 인식의 차원이 열리는 걸까. 모래를 헤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거북처럼 비로소 그도 또한 아내를 다시 이해하게 될지 모르겠다.

 

‘푸른 모래의 시간’을 지나며 슬픔을 견디는 자. 그의 시간은 이 소설의 제목처럼 푸른빛을 띤 모래의 시간을 지날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다 읽고 제목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픔으로 응축된 모래의 시간을 지나며, 그 또한 박제된 거북처럼 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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