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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에 대한 모든 것을 배출한 작품

해일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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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계일주 같은 예능을 보면 기안84가 지나치게 미니멀리즘한 짐을 갖고 여행하는 모습에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정작 우리는 짐은 늘리기 쉽지만 줄이기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이사를 갈 때마다 짐을 버리는 일은 점점 가면 갈수록 힘들어진다

넓은 집으로 가야 사이즈가 맞겠지만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집값은 점점 더 폭등하고 있기에 짐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의미로부터 다양한 것들을 확장, 파생시킨다.

 

얼마 전에 조재민 작가님의 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나서 공모전 데뷔작인 <>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통상적으로 짐이라고 하면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의미가 연상된다. 눈에 보이는 짐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짐은 더욱 관념적으로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런 선입견 때문에 선뜻 이 작품을 결재하고 읽지 못했다.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소설이 아닐지 의심했던 것이다.

X를 읽고 나서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졌고, <짐>을 단숨에 읽고 나서 나의 선입견은 지나친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짐에 대한 인물의 상황으로 시작된다. 짐 때문에 이사를 고민하다가 부모님의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된 부부, 남편을 화자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세상 모든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미니멀리즘으로 사는 인물이다. (심지어 가장 세속적인 질문이 아버지 은퇴하셨어?’인 사람이다)

메인 갈등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축은 화자와 아내인데, 짐을 줄이려는 화자와 짐을 쌓아두고 사는 아내는 둘 다 상반된 짐에 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짐에 대한 갈등이 사건과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결말까지 재치 있고 기발하게 끌고 간다주변에 있을법한 사소하고 친숙한 상황들이라 더 잘 읽혔고 점입가경의 상황들이 몰입도를 높였다.

그가 짐을 줄이기 위해 단행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기괴하기 까지 해서 읽는 내내 웃었다. 화자와 밀착되다 보니 묘하게 느껴지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도 있었다. 

이 작품에서의 짐은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를 적절히 교차하며​ 가장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고찰까지 가져간다는 점에서 습작을 하는 나로서는 배울 점이 꽤 많았다.

짐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짐만을 버리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내포한다는 결말까지 보여줬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중에는 중심성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주어진 짐에 대한 상황들이 확실한 결말로 끌고 가서 명확한 중심성과 메세지를 주었다

초지일관 짐에 대해 집요하게 서술했지만 그에 반해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낸 점도 돋보인다.

여러모로 짐에 대해서 작가가 많은 고찰했다는 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와 능청스러운 전개로 더욱 블랙코미디적인 부분을 돋보이게 했다.

아마 지나치게 과장해서 서술했더라면 주인공의 정서나 작품의 개성이 죽었으리라 생각된다. 좋은 톤앤매너를 장착한 작품이다. 

 

 

인물에 대해서도 군더더기 없이 잘 활용이 되었으며 중간에 나오는 아내의 아버지, 장인어른 캐릭터는 아내의 가장 큰 짐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모습은 일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말에 화자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엔딩에 이르러서는 자기 존재적 의미, 자유, 그걸 뛰어넘은 무아 까지 압권의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빈 공간도 짐. 무언가로 차 있는 공간도 공기로 가득한 짐인 것일까.

짐에 대한 모든 것들로 잘 배출된, 잘 쓰여진 작품이었다.

 

엔딩의 주인공은 과연 편해졌을까불편함과 편함을 왔다갔다가 하다가 하나가 되는 영점에 이르지 않았을까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나 또한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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