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를 먼저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시작부터 장면이 펼쳐지며 상황과 대사가 보였다는 점이다.
당연히 소설이라면 그래야 되지만 이상하게도 SF 소설을 습작한다면
많이 겪는 오류 중의 하나가 세계관과 배경 설명하느라 분량과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주인공인 유연과 도나가 로봇 강아지를 입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입양을 해온 목적은 명확했다. 유연이 정미에게 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배울만한 점 중에는 하나의 기술(Technology)만 다루고 있다.
SF 단편을 쓰다 보면 다양한 기술로 현란하게 구사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은 환상에 빠진다. 장편도 아닌 단편에서 뭔가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다 보면 큰 오류에 빠지게 된다.
분량상 단편에서는 하나 내지는 많아야 두 가지 정도의 기술만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그런 부분들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사이보그로 수술하여 영생을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보통은 장애가 있거나 노화가 있는 경우에 수술을 감행하는데 유연은 다소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들을 두 주인공의 대화나 상황, 다른 사이보그 친구의 상황 등으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이질적이지 않고, 편하게 작품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유연이 사이보그 수술받기를 원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메세지로서 관통한다.
몸에 대한 혐오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유연. 그녀의 직업은 몸을 보여주고 뽐내는 일이기에 몸에 대한 트라우마로 수술하게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관종이라 해서 온몸으로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몸으로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 몸을 포기하고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인간도 있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작가라는 존재들도 어쩌면 몸 보다는 자신의 작품, 정신적으로 관심을 받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정미와 유연의 갈등은 그녀의 수술을 두고 이야기 시작부터 출발하게 되는데, 결국 몸이 나인지 그걸 뛰어넘은 무언가가 있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결말까지 둘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은 미래 배경의 생소한 기술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활용하면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장치들을 사용한다.
첫 번째로는 테이블인데, 제목이기도 하면서 둘에게 가장 중요한 오브제이다.
가족이라면 밥을 먹을 때 테이블을 두고 마주 보게 된다. 유연이 사이보그 수술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테이블은 그 전처럼 그들에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그대로 그 둘에게 테이블은 남아있다. 테이블에 있는 상처나 흔적, 한숨, 둘의 대화나 감정들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현재를 교차하며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두 번째, 둘의 대화나 상황들로 보이는 정서들 – 사랑의 감정, 잔상들은 미래라고 할지라도 보편적일 것이며, 현재의 우리의 정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점이 이 작품의 정서와 현실성을 더 부각시켜 주며 몰입도를 높인다.
세 번째, 강아지 로봇 도나의 존재이다.
첫 장면부터 반려 강아지로 입양되어 사이보그 존재에 대한 모습들을 구체적이며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 정미는 달가워하지 않지만 나중에 돼서야 가까워진다. 유연의 결정을 존중하게 되는 데 있어 자연스러운 역할을 맡는다.
나는 과연 어떤 나인가, 몸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존재인가.
과연 육체를 버리고 사이보그가 된다고 해서 몸을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 인간의 몸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사이보그 소재를 아주 반어적으로 잘 활용했다.
나에게도 많은 화두를 남겨줬고, 특히나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