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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와 만난 따뜻한 얼음 동굴

김유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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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확히 36.7도에 해당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과도 같이,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온기였다."

 

<데니의 얼음동굴>에 나오는 이 장면은 어릴 때 내가 무수히 꿈꾸고 그리워하던 장면이다.

무척 외로웠던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가상 친구와 만나고 싶어 했다.

이 소설은 외로운 독자, 나 같은 사람에게 동화적 구원을 제공한다.

 

주인공은 어릴 때 냉동고에 손을 뻗었다가 원시시대의 아이와 만난다. 그 아이의 엄마는 없었고, 주인공은 아빠가 없다. 그 아이와 이야기 하며, 그 아이의 엄마와 나의 아빠는 어쩌면 너무 추워서 세상을 떠났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 아이와 만난 주인공은 자작나무 가득한 숲을 지나 호수에 이른다.


데니는 더운 지방의 네안데르탈인과 추운 지방의 데니소바인이 만나 사랑을 나누어 태어난 혼혈 아이이다. 단순 배경이 아니라, 이런 인물 설정은 직관적으로 마음의 온도 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류학적 사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시각화한 점이 기가 막히다.

단편 소설 내에서 인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하면서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판타지를 펼치면서 작가의 창의력을 마음껏 뽐낸다. 그러면서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는 적절한 현재와 과거의 비율이 인상적이다.

판타지가 분명함에도 철저하게 현실에 한쪽 발을 딛고서, 고대 인류부터 지금 현시대 인류 모두 관통하는 주제를 다루어 공감을 끌어낸다.

이렇듯 이 소설은 판타지를 펼치면서도, 어디 무한한 꿈 속을 헤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체감하는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시작되는 부분의 이질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독자가 판타지에 빠질 수 있게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구성한 것이 진심으로 인상적이었다. 판타지가 뜬끔없지 않도록 앞서 관련된 분위기를 현재 시점에서 조성하며 전개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비슷한 처지의 데니를 만나서 경험한 일은 치유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읽으며 독자인 나 또한 위로받았다.

진정한 위로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화 같은 소설이었다.

더불어 주인공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지만, 그것이 아주 비극적으로 다루어 지지 않은 점이 좋았다. 인류사적인 요소를 깔아놓은 것도 한몫 했다. 덕분에 기나긴 시간을 느끼며 초월적인 세계관으로 인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 어머니의 어려움도 아주 슬프기 보다는 배경과 함께 초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편 소설의 마지막에 걸맞게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결말은 소설 속에서 녹는 장면으로 명확한 인상을 준다. 

따뜻한 지방의 네안데르탈인과 추운 지방의 데니소바인이 만나 태어난 혼혈 아이 데니를 통해 주인공은 간접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주인공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사랑이 시작되어, 그 사이에 있던 온도차를 체감하고, 결국 둘 사이의 어떠한 종말을 맞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데 닿는 과정이다. 소설에서 나타난 그 길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시경 작가 특유의 감성과 상징이 역시 잘 드러난 작품이다.

감정의 온도 차로 이별하거나, 이별한 사람을 이해해 보고 싶다면 <데니의 얼음동굴>을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소재가 배경으로도 상징으로도 어떻게 사용 되었는지 볼 수 있으며, 감성적인 문체를 따라 주인공이 이해에 닿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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